오뉴월 꽃그늘이 드리우는 마당으로 우체부는 산골 조카의 편지를 놓고 갔구나, 바람 한 점 흘리지 않고 꽃씨를 떨구듯.
편지는 활짝 종이 등을 밝히며 서로를 파란 가슴을 맞대고 정겨운 사연을 속삭이고 있구나.
찬연한 속삭임은 온 마당 가득한데, 꽃씨를 티우듯 흰 깁을 뜯으면 샘재봉 골짜기에 산딸기 익어가듯 조카는 예쁜 이야길 익혀놨을까.
모두 흰 봉투에 숨결을 모두우며 꽃내음 흐르는 오뉴월 마당으로
「석 산 이 아 저 씨 께」
아, 조카가 막 기어다니는 글씨 속에서 예쁜 이를 드러내고 웃고 있구나.
윤석산(1947~) ‘편지’ 전문
똑딱하면 태평양을 건너가는, 전자메일에 길들여진 내 손가락은 글씨를 잃은 지 오래, 굳은살이 박이도록 힘 박박 줘가며 편지를 쓰고 원고를 쓰던 손가락은 경망스러울 만큼 가볍게 자판 위에서 춤을 춘다. 피봉을 뜯으면 꼬물꼬물 애벌레처럼 살아서 쏟아지던 고운 글씨들. 꽃씨처럼 손바닥에 받아서 읽던 마음도 점점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적자를 본다며 울상인 우체국에선 우표 값 2센트를 또 올렸다고 한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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