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와이 한인이민 104주년 특별 연재, 빅 아일랜드 해리 김 시장의 가족 이야기
▶ 맹도티 쉬러 저, 신명섭 교수 역
그렇게 해서 겨우 유세가 시작되는가보다 싶을 때 연방정부로부터 부탁이 들어왔다. 온두라스(Honduras)에 가서 민방위체제 개발을 도와달라는 거였다. 해리의 마음속에 그런 일을 도와야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해리는 선거유세를 일주일간 미룬 채 온두라스로 떠났다. 거기서 민방위당국자들을 만나 24년 전 하와이에서 실시했던 재해대책을 고취시켜 주었다. 즉 발생가능한 재해와 긴급사항은 빠짐없이 다 평가하여 사전에 준비하라, 또 그러려면 대민 안내서라든가 지도 및 안전관련 부처들 간의 긴밀한 상호조정과 의사소통을 완비해 두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와이로 돌아온 해리는 유세를 재개하였다.
시장 지원자 Harry Kim이라는 내용이 알차게 담긴 포스터가 전보다 무겁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몸도 쇠약해지고 혈색도 누르스름해 보였다. 온두라스에 가 있는 동안 오염된 물과 음식을 먹고 간염에 걸린 것이다. 선거유세는 또 다시 중지되었다. 그때 우리는 해리더러 유세를 철회하라고 권했다. 시장에 당선되구 나서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라고 친지 중에 걱정스런 누가 비꼬았다. 동생이 살아서 우리랑 같이 있는 게 좋지. 이번엔 다른 사람이 응수를 두었다. 나 괜찮아요.
전염성만 없어지면 유세를 계속할 겁니다. 해리가 집에 누워서 대꾸하는 말이었다. 정기 헌혈기증자인 해리는 그럴 수 없는 게 아쉬웠다. 그러는 동안에 10불짜리 기부금은 계속 들어왔다.
해리는 기증자에게 일일이 친필로 감사장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받은 기부금은 총 8,686달러였다. 해리가 공화당이 좋아하는 예비선거 후보는 아니었지만 하비 타지리를 누르고 당의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총선에 나온 경쟁자는 민주당의 프레드 홀슈와 녹색당 후보 케이코 봉크였다. 해리 쪽은 선거본부 같은 건 없이 거의 전적으로 포스터를 들고 손을 흔드는 일과 범퍼 스티커에만 의존하는 데 비해 반대진영에는 캠페인사무실에 직원도 많고, 미디어 광고, 넉넉한 자금, 포스터를 흔들어 주는 응원단, 돈 들여 만든 포스터를 사용하는 등 유세규모가 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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