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몇 해 전 뉴욕시를 방문하던 중 친지와 함께 어느 법정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것을 볼 기회가 있었다. 유명사건이 아니어서 그런지 법정 반 이상이 비어 있었다. 자리에 앉자, 마침 피고측 변호사가 변론을 시작하였다. 단정한 정장 차림의 여변호사였다.
변론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나는 이 변호사의 이상한 버릇을 주목하게 되었다. 열심히 변론을 하면서 자기의 머릿결을 뒤로 쓸어 넘기는 버릇이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꽤나 긴 변론도중 눈에 띌 정도로 자주 머리를 쓸어 넘기는 모습을 보니 방청객인 내가 괜히 불안해졌었다.
다음 에피소드는 이곳 LA에 있는 어느 부페식당에서 있었다. 단체모임 후 갖게 된 회식이었는데, 나와 젊은 청년들 몇 명이 한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모두 명문대학을 나온 엘리트들로서 교육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로 꽤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문제는 식사가 다 끝날 때쯤 그 중 한 명의 접시를 보고 그때까지 느꼈던 좋은 기분이 싹 가시게 된 것이었다.
접시에 그득히 남은 음식도 그렇거니와, 그 음식을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휘저어 놓고 남긴 모습이 민망하리만큼 보기 좋지 않았다. 부페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조금 지나쳤다.
변론 도중 머리를 쓸어 넘기거나 접시에 음식을 지저분하게 남기는 버릇이 이미 전문직에서 성공한 성인들에게 별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머리를 쓸어 넘기지 않고 접시에 많은 음식을 남기지 않는 것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아이들을 보면서 저런 버릇은 좀 고쳤으면 하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버릇, 오며가며 침을 뱉는 버릇, 콧속 후비는 버릇, 손가락 마디를 딱딱 꺾는 버릇, 의자에 앉아서 다리를 흔드는 버릇, 슬리퍼를 질질 끄는 버릇, 말끝마다 욕을 섞어서 하는 버릇은 모두 중대한 범법행위는 아니지만, 사회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불유쾌한 행동들이다.
결코 좋은 버릇이라고 할 수 없는 행동을 고치라고 주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학생들에게서 좋지 않은 버릇이 눈에 띈다고 해서 선생님들이 잔소리를 할 수 있는 시대는 옛날 옛적에 지나가 버렸다.
아이들에게 옳고 그른 것을 가르치고, 좋은 버릇과 나쁜 버릇의 차이를 가르치는 의무는 결국 자녀의 최초의 교사라는 부모의 몫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녀에게 모범교사 노릇을 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천진하고 사랑스럽기만 아이가 언제부터인가 ‘노’ 라는 자기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하면서, 부모의 뜻과 자녀의 뜻이 어긋나는 경우가 차차 늘어나기 때문이다.
자녀의 ‘노’는 말하자면 부모의 말에 무조건 따르지 않겠다는 독립 인간으로서의 권리주장을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아이들의 나이가 많아질수록, ‘노’의 횟수와 강도는 커지고, 부모의 영향력은 적어진다는
것이다. 이미 성인이 되었거나 10대가 된 자녀에게 부모의 ‘잔소리’가 얼마나 무력한가를 많은 부모들이 경험했을 것이다.
좋은 버릇 들이기와 나쁜 버릇 고치기를 될 수 있는 대로 자녀의 나이가 어렸을 때에 시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린 가 뭘 알겠어. 조금 큰 다음에 가르쳐주지” 또는 “나이 들면 자연히 알아서 잘 할 거야”라는 미루기나 방임하기가 버릇없는 성인들을 양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기억해야겠다.
김 순진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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