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무슨 넝쿨일까
혼자 떨어져 살 때는 옆구리 허전하여 팜트리 밑둥도 감아보고 붉은 벽돌담 타보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허리를 잡히거나 움켜쥔 아랫도리 주르르 흘러내렸다. 신발의 흙도 다 못 턴 식구들 서둘러 한 구덩이에 불러 모으니, 다시 눈 찔리고 밥숟갈 헝클어져도 서로 이름 불러주고 화장실 앞세우니 말아쥔 덩굴손 주먹 낭창낭창 뻗어나간다. 꼬이고 삐뚤어져도 한 줄 잡고 오래 늘어지다 보면 그 버릇도 내 버릇 되고 내 재주도 네 재주 되는 것을. 어쩌다 잠시 서울에 나가도 내 떨거지들 이미 거기 없으니 일주일도 못 밍그적거리고 신발을 돌려 신는다. 그 옛날 비 새던 초가지붕 이리저리 기어가 온몸으로 가려주던 그 호박넝쿨의 일가.
장용철(1958~)‘가족’전문
세상에서 가족보다 질긴 채찍은 없고, 가족보다 높게 올라가게 하는 사다리도 없고, 가족보다 더 힘 좋은 불도저는 없다. 따지고 보면 우주의 삼라만상을 운영하는 것은 모두가 가족의 힘인 것을. 고국으로부터 가족을 데리고 올 수가 없어 헛손질이나 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 하루라도 빨리 이민법이 개정되어 한 넝쿨에 매달린 일가로만 살아도 좋겠다. 캘리포니아 사막을 뒹굴든, 맨해튼 빌딩을 기어오르든 간에 한 넝쿨에 매달린, 가족이라는 이름으로만 살 수 있다면.
한혜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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