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박사가 설립한 한인기독학원’(2)
▶ 2. 한인여학원 설립
한인중앙학교와 여학생 기숙사가 멀리 떨어져 있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이승만은 1915년 여름에 5천 달러를 들여 이 기숙사 옆에 있는 (1907년에 개장한 Oahu Country Club 부근) 3.5 에이커의 땅을 사고 1천 8백 달러를 들여 선생을 위한 방 두 개가 있는 단층의 학교 건물을 지었다.
가을 학기부터 이 곳을 한인여학원 (Korean Girls’ Seminary)이라 이름하고 이승만이 교장이 되었다.
10월 14일에 개관식에 수백 명의 한인들이 모였다.
감리교선교부의 전 감리사 John W. Wadman (1905-1914 재임)과 감리사 William H. Fry와 이승만이 축사를 하였고, 학생들의 합창 등 여흥순서도 있었다.
Wadman 전 감리사는 이 학교가 사탕수수 농장의 한인 여학생들에게 고유의 미국 교육을 수업키 위하여 이승만의 착안으로 시작되었다고 강조하였다.
이승만은 이 여학원을 개교하기 바로 전 6월에 한인중앙학교 교장직을 사임했다.
학교 이름의 Seminary 라는 단어는 당시 여학교를 지칭하는 것으로 특히 기독교회가 운영하는 여학교 이름으로 흔히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Hawaiian Board of Evangelical Association에서 운영한 여학교 이름이 Kawaiahao Girls’ Seminary로 현 호놀룰루 시청 옆에 있었다.
이 Kawaiahao 여학교에 다닌 첫 한인 여학생은 1905년에 다닌 Mollie Hong (홍치범의 동생)이었는데, Mollie Hong은 후에 민찬호 목사의 부인이 되었다.
후에 홍치범 목사의 부인이 된 김애경도 이 학교에 다녔다.
이승만이 1914년 여름부터 1916년 1월까지 즉 한인중앙학교의 여학생 기숙사를 지을 때부터 한인여학원을 설립할 때까지 총 7천 7백 달러를 모금하였는데, 이 기금 중 2백 달러만 미국인으로부터 모금한 것이고 나머지 7천 5백 달러는 한인동포로부터 모은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승만은 한인여학원을 자신이 한인들의 기금으로 세운 학교, 즉 하와이 감리교선교부와는 관계없는 독자적인 교육기관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이승만은 이 한인여학원의 시작을 1913년 한인중앙학교에서 여학생을 받아들이면서 기숙사를 마련한 때부터라고 간주했고, 이 학교를 설립하게 된 동기가 웨슬리 홈을 운영하는 감리교 본부 여선교와의 의견차이 때문이라고 밝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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