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박사가 설립한 한인기독학원’(7)
▶ 한인여학원 재정
한인여학원의 재정을 보면, 1914년에 기숙사를 건축하였을 때 기지 구입과 건축비로 인한 빚이 있었다. 이승만은 국민회가 기증한 Emma 기지를 처분하여 이 빚을 갚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1915년 건축으로 기지 구입과 건축비 총 8천 2백 달러 중 4천 달러를 갚고 4천 2백 달러의 빚이 있었다.
4천 달러의 빚을 갚을 수 있었던 것은 하와이 섬과 카우아이 섬 한인들의 성금 때문이었기에, 앞으로 오아후 섬과 마우이 섬 한인들이 후원하면 나머지 모든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이승만은 믿었다.
1916년 12월에 발간된 『호항 한인녀학원 재정보단 제4호』에 의하면 (재정보단 제1호부터 3호까지는 남아있지 않다), 1916년 1년동안 총 5천 645 달러 10센트의 후원금이 있었는데, 그 중 약 63% ($3,538.10)는 하와이 각 섬의 한인들과, 또한 한국과 미주 본토에 있는 한인들이 후원한 것이고, 나머지 27% ($2,107)은 18명의 백인과 백인 회사에서 후원한 것이었다.
총 지출은 3천 613 달러 79 센트로, 잔액이 1천 52 달러 17 센트였다. 또한 이 재정보고서는 1913년부터 1916년까지 한인들이 후원한 금액도 요약하여 발표하였다.
1913년 2월부터 1914년 8월까지 (재정보단 제1호에 보고된 것 같다) 2천 88달러 60센트, 1914년 8월부터 1915년 4월까지 (재정보단 제2호에 보고된 것 같다) 1천 358 달러 20 센트. 1915년 7월부터 1916년 1월까지 (재정보단 제3호에 보고된 것 같다) 3천 698 달러 60 센트, 1916년 2월부터 1916년 12월까지 (재정보단 제4호에 보고된 것) 3천 538 달러 10 센트, 그리고 국민회가 기증한 Perry Tract Lots (Emma 기지) 구입 시가가 3천 49달러 55 센트와 1915년 8월부터 1916년 12월까지 미국인 친구가 기부한 2천 7 달러였다.
그리하여, 약 4년 동안에 총 수입금이 1만 5천 840 달러 5 센트였고, 총 지출은 1만 1천 738 달러 33 센트로 잔여금이 1천 52달러 17 센트였다.
이 재정보고서에서 알 수 있는 것은 4년 동안 한인들의 후원과 미국인 친지들의 후원으로 한인여학원이 어렵게나마 흑자로 운영되었다는 것이다.
한인 교사와 백인 교사들의 월급은 지급되었지만 이승만은 월급을 받지 않았음도 알 수 있다. 또한 이 재정보고서는 이승만의 철저한 기록 습관과 명확성 그리고 공금의 투명성을 일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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