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박사가 설립한 한인기독학원’(8)
▶ 여학생 증가
여학생 수는 예상보다 많이 증가하여 1915년 개학 당시에 45명이었던 것이 1916년 가을 학기에는 73명으로 증가되었다. 그러나 많은 학생들이 학비를 내지 못하여 2학기에는 57명으로 줄었다. 학생 수가 73명으로 되었을 때 기숙사 시설이 모자랐음으로 기숙사를 더 지을 계획을 세웠다. 1917년 10월 20일자로 되어 있는 한인여학원 부교장 송헌주
의 글에 의하면
는 ‘그 동안에 1만 달러가 드는 새 기숙사를 한 미국인 독지가가 약정한 1만 달러로 지으려고 하였으나, 한인여학원을 태평양학원과 합부(합병) 시키려는 계획이 생기면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여러 미국인 친지들의 도움으로 새 기숙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학교 운영에도 미국인 친지들의 재정적 도움을 얻었는데, 올해는 건축비 이외에 운영비까지 보조해 달라고 할 수 없으니, 한인들이 특별한 정성을 써서 (송헌주의 글에는 이 말에 동그라미를 그어 강조하였다) 학교 운영비를 도와 줄 것과 기숙사가 완공되면 내부 시설비를 후원하여 달라’고 호소하였다.
송헌주 부교장이 밝힌 태평양학원과의 합병 문제를 설명하면 아래와 같다. Kawaiahao Girl’s Seminary 와 Mills Institute은 Hawaiian Board of Evangelical Association에서 운영한 기숙학교였다. Kawaiahao 여학교는 1864년에 하와이 원주민 (Hawaiian and par-Hawaiian ancestry) 여학생을 위하여 설립되었고, Mills Institute는 1892년에 중국인 남학생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1908년에 Kawaiahao 여학교가 32 에이커의 마노아(Manoa) 부지 (현 Mid-Pacific Institute 부지)로 이사하였고, 2년 후에는 Mills Institute가 그 곳으로 이사하였다. 같은 부지로 이사한 두 학교는 1923년까지 각각 운영되다가 1923년에 남녀공학으로 병합하면서 공식으로 Mid-Pacific Institute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러나 공식으로 이름 변경을 하기 전에도 Mid-Pacific Institute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송헌주는 이 학교를 태평양학원이라고 불렀다.
Kawaiahao 여학교에 Mollie Hong이 다닌 것을 시작으로 계속하여 여러 한인 학생이 다녔으며, 한인 여학생들의 수는 물론 일본인, 중국인 여학생들의 수가 계속 증가하였다. 그리하여 1908년에 Kawaiahao 여학교에 한국어 반, 일본어 반, 중국어 반을 설치하여, 각 민족 여학생들이 모국의 언어와 문예에 익숙해 질 수 있게 하였다.
1916년에 총 학생 108명 중에 6명의 한인 여학생이 있었으며, 하와이 원주민 학생은 48명, 중국인 31명, 일본인 10명, 필립핀인 5명, 그리고 기타의 민족 학생 8명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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