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만박사가 설립한 한인기독학원’(9)
▶ 태평양중앙학원의 합병 제안 거부
한인여학원과 Mid-Pacific Institute은 기독교계 사립학교로서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갖고 있었다. 1917년 2월 22일에 Mid-Pacific 학교가 주최한 카니발에 한인여학원 학생들이 광화문의 꽃차를 만들어 참가하였다.
이승만이 이때부터 광화문을 한국의 상징으로 생각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년 후에 이승만은 1938년 한인기독교회의 새 교회당에 광화문 문루를 가미하였다.
1917년에 Hawaiian Board of Evangelical Association이 Kawaiahao 여학교와 한인여학원을 합부 (합병 amalgamating)하고자 하는 자세한 계획서를 이승만에게 보냈다.
당시 호놀룰루에 중국인이나 일본인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따로 없었고, 한인 여학생을 위한 한인여학원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Kawaiahao 여학교는 한인여학원과 병합하여 모든 동양계 여학생들을 한 학교에서 가르치고자 한 계획을 세웠고, 이 계획을 이승만 교장에게 전달하였던 것이다.
이승만은 이 계획안을 번역하여 찬성회원 (후원회원)과 한인 단체에게 돌리고,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후원회원들의 “한인의 학교는 한인이 유지하겠다” (송헌주는 동그라미로 강조)라는 의견을 종합한 이승만은 아래와 같은 장문의 답을 Kawaihao 여학교에 보냈다.
이 답장에서 이승만과 한인여학원을 후원한 동포들의 민족주의적 교육의 책임과 욕구를 알 수 있다.
1) 한인여학원은 한인들이 한인을 위하여 설립했기 때문에 [내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합병 문제는 한인들이 결정하여야 한다.
2) 합병계획안을 한글로 번역하여 한인 단체들에게 배포하였다. 한인 단체들은 독립된 한인여학원을 계속 운영할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3) 한인기독교 지도자들은 한인들이 자녀들의 교육의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 좋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자신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것이 부모로서 또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이행하는 것임을 의식하고, 또한 교육의 책임을 수행하는 것은 한인 자신들을 좀 더 나은 그리고 긍지를 갖는 주민이 되도록 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4) 마지막으로, 우리도 태평양학원이 여러 민족을 합병하여 균등한 사회를 이루려고 하는 이상(理想)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한인들이 이 섬에 온 것은 12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이상을 실현할 기회가 없었다.
우리는 현재 상황에서 한인여학원을 지금대로 계속 운영하는 것이 이 [원대한] 이상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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