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이다. 1910년 8월 29일 일본에 의해 합방된후 온갖 탄압 속에서 우리 민족은 굴하지 않고 태평양을 건너 타국에서도 조국 광복을 위해 투쟁을 계속 하였다.
1903년부터 본격적인 미국 이주를 시작한 동포들은 한인 친목회와 공립협회를 설립, 공립신보를 창간하는 등 자주독립을 위한 단결을 고취 시켜 나갔다.
1912년 리버사이드에서 LA로 온 도산선생은 민족을 대표할 인재양성을 구체적으로 실천하기위해 흥사단 창립을 준비한다.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발전을 위한 인재 양성의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한편 독립운동의 지원과 물자보급 등의 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북미실업 주식회사를 설립, 독립자금을 모았고 한인 비행학교를 설립, 공군 조종사를 훈련시키기도 하였다.
1913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미국 내 중국인들의 협력을 통해 독립의연금 모금을 추진했다. 도산선생은 ‘미국에게 보내는 한국인의 호소’라는 글을 써 시사 주간지 ‘네이션’에 게재하기도 했다.
재미 한인들은 임금노동자로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독립을 위한 각종 명목의 의연금을 아낌없이 냈다. 이러한 애국심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미국과 싸우다가 1945년 원폭투하에 놀라 8월 15일 무조건 항복,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광복절을 맞아 우리는 선조들이 남긴 발자취를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안주옥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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