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서울대 합창단 정기 공연이 있었다. 남편과 고등학교 동기동창인 절친한 친구로부터 우리 부부가 초청을 받았다. 좌석이 어딘지는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번호대로 찾아 들어가니 황송할 정도로 좋은 자리였다.
작년 창단 공연에 이어 두 번째로 같은 무대에 서는 합창단은 이번에도 웅장하고 아름다운 율을 선사했다. 클래식과 한국가곡, 한국 판소리와 합창이 만나고, 특히 오케스트라와 국악이 조화를 이룬 어울림이 경이로운 감탄을 자아냈다. UCLA 민족음악학교 제자들로 구성된 학생들의 사물놀이도 매우 신선했다. 상모로 파란 눈의 키 큰 외국 청년이 머리를 흔들어대는데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전율이 느껴졌다.
2부 순서로는 신세대 소리꾼인 이자람씨가 고운 한복 차림으로 춘향가의 일부를 불렀다. 그 많은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추임새를 넣으며 함께 호흡하고 감동하고 있었다. 우리의 소리, 전통 음악 속에 저런 민족의 한과 얼이 들어있음을 해외 동포들에게 깨우쳐주는 소중한 기회였다.
서울대 남가주 동창회장 김동석씨(UCLA 국악과 교수)의 뜻 깊은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UCLA 국악학과를 설치하고 우리 한국 고유의 전통 음악을 소개하고 전파하는 김동석 교수의 수고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어 길이 없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렇잖아도 토요일 저녁 어느 독지가의 집에서 한국 음악학과를 위한 모금 콘서트를 갖는다고 해서 그곳에도 참석했다.
거실 코너를 무대로 고수 김홍식씨와 함께 소품이라곤 손에 든 부채 하나로 완벽하게 뮤지컬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심봉사가 어린 심청이를 안고 동냥젖을 구걸하는 장면이라든지 황후가 된 효녀 심청을 만나 눈을 뜨는 대목에서 그려내는 얼굴 표정들은 무대장치나 화장이 전혀 없이도 부녀의 심정과 상황을 생생히 드러내주는 것이다. 즉석에서 모인 후원금이 3,500 달러에 달한 것을 보면 신세대 소리꾼, 젊은 국악인을 어려움을 무릅쓰고 모셔올 만 했다.
모처럼 좋은 음악회, 특히 고국의 판소리, 국악과의 만남을 주선해 준 남편의 친구, H씨를 감사하는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내 손을 끌어 이자람씨와 김홍식씨에게 인사할 수 있는 순간을 만들었다. “한국서 살았다면 가깝게 만나볼 수도 없는 귀하고 훌륭한 인재들을 LA 사는 덕에 이렇듯 쉽게 뵐 수 있네요.” “아니요, 우린 절대로 훌륭하지도 귀하지도 않아요.” 겸허해 하는 그들의 말이 더 자랑스러웠다.
조정희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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