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있는 척이라도 할 것 : 열성”
워싱턴 DC에 있는 정부기관에서 중견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첸씨와 만나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첸씨는 캘리포니아에서 낳고 자라서 대학까지 나왔지만, 동부에 있는 법대를 졸업하고 워싱턴에서 직장을 얻는 바람에 이제는 동부사람이 되고 말았다.
첸씨가 하는 일은 정부 산하에 있는 여러 기관 내에서 인종, 성별, 나이, 학력, 종교 등을 이유로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감시하면서, 공무원끼리의 분쟁이 생기는 경우에는, 법정에 가기 전에 양측 주장을 중재하는 일이다.
하는 일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첸씨는 웃으면서, 재정금융계나 하이테크에서 성공한 동창들에 비하면 보수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떨어지지만, 그런 대로 미국사회 일부를 들여다보는 위치에 있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직업에 만족한다는 얘기였다.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 좀 해달라는 부탁에 첸씨는 그러지 않아도 지금 자기 부서에서는 여름방학 동안 십여명의 인턴이 근무하고 있다고 하면서, 이들을 훈련시키고 관찰하면서 느낀 바에 대해서 몇 가지 얘기를 해주었다.
거의가 좋은 대학에서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는 인턴들이지만, 한 주일만 지나고 나면, 나중에 채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인턴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인턴들이 있다고 한다. 이들 똑똑한 인턴들을 앞으로 ‘채용추천’ 그룹과 ‘채용 추천하지 않음’의 그룹으로 나누게 되는 첫 번째 기준으로 첸씨는 각 인턴들이 보여준 일에 대한 열성(enthusiasm)을 들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발탁된 인턴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가 할 일에 대해서 열성을 보여야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첸씨의 말이다. 한 예로써 현재 자기 직속으로 있는 인턴 중에서 ‘채용 추천하지 않음’에 들어가게 된 한 동양계 여학생을 들었다.
대부분의 인턴들은 일단 중재미팅 시간표가 발표되면, 자기를 찾아와서 ‘미스터 첸, 당신의 중재미팅을 참관하게 되어서 얼마나 기쁘고 영광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흥분이 되어서 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어요. 앞으로 많은 것을 당신으로부터 배우고 싶습니다’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면서, 인사와 함께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자기에게 배정이 된 이 동양계 여학생은 중재미팅이 내일인데도 아직 만나보지도 못했다. 할 수 없이 첸씨가 찾아가서, ‘내일 내 미팅에 참관하기로 한 아무개씨 맞지요?’라고 인사를 청했더란다. “예, 맞습니다. 내 이름은 XX이고요. 만나서 반갑습니다”가 전부였다.
첸씨의 공적인 임무는 직장 내 차별금지가 제대로 준수되고 있는가를 체크하는 것이다. 또 사적으로는 자신도 동양계로서, 인종을 근거로 한 고정관념이 옳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이고 열성을 보이지 못하는 인턴들 중에는 주류사회 학생들보다는 동양계 학생들이 훨씬 많고, 따라서 채용 가능성에서 주류사회 출신보다 불리하다는 것이 첸씨의 경험이었다.
얌전하고 성실한 우등생이라는 이미지만 가지고는,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리더로 앞서 가기가 어렵다. 꼭 그 직장에 취직을 하고 싶다면, 없는 열성이라도, 있는 척 행동하라는 것이 첸씨가 웃으며 해주는 조언이었다.
‘나 같이 일류 학력을 갖춘 사람에게 이 일은 안 맞는 일이다’ ‘더 나은 곳으로 옮길 때까지 이일은 임시로 하고 있다’ ‘하고 싶지 않지만 부모가 떠밀어서 할 수 없이 하고 있다’ ‘묵묵히 내일만 할 테니까, 나를 내버려 두라’는 식의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아무리 우수한 성적의 수재라 해도, 어느 직장에서도 환영 받지 못한다는 것을 첸씨는 부차적으로 조언해 주었다.
김 순진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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