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성공회 앞뜰
모과나무 아래 놓여 있는 돌의자
발목 다친 비둘기가 앉았다 간다
술 취한 노숙자도 낮잠 자다 간다
신문지 몇 장 남겨두고 간다
이따금 모과나무 가지 사이
며칠 잠 못 잔 하늘이 왔다가 간다
모과나무에 모과가 열리듯
그렇게 살 수는 없나, 중얼거리며
傷心한 얼굴로 커피 한 잔 마시고 간다
어린아이도, 마른 꽃잎도, 성가 소리도 앉았다 간다
낙엽 질 땐 속눈썹 긴 바람이
잠깐 앉았다 가고
그 뒤에 키만 훌쩍 큰 저녁이 멈칫멈칫 따라와
대책 없이 줄담배 피우고 간다
누구나 와서 쉬었다 가는 돌의자
날마다 세상을 향해
조금씩 길어지는 돌의자
전동균(1962~) ‘돌의자’ 전문
과나무에 모과가 열리는 것처럼 순리대로 살아지지 않는 사람들. 이처럼 소외되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 종교다. 그러니 <성공회 앞뜰 모과나무 아래에 놓인 돌의자>는 날마다 세상을 향해 길어져야 마땅하다. 발 다친 비둘기, 노숙자, 어린아이와 성가 소리. 그 뒤에 한결같이 따라 붙는 <간다>의 의미를 잠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끊임없이 갈 수밖에 없는 인생들, 지친 여정 가운데 돌의자가 참으로 고맙지 아니한가.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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