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만 해도 고향마을 서쪽 동구 길목에는 수령을 알 수 없는 세 그루의 늙은 느티나무가 나란히 서 있었다.
맨가의 큰 나무는 덩치가 어른 대여섯이 팔을 벌려 안을 만큼 컸고 가운데 나무를 사이에 두고 안쪽은 두레우물이 있고 바깥쪽은 빈 터여서 여름에는 할일 없는 노인네들이 자리를 깔아놓고 한더위를 보냈다.
우리는 이 정자나무를 당나무라고 불렀고 정월 대보름에는 금줄을 쳐두고 동장이 제주가 되어 마을고사를 지내고 풋굿도 여기서 했다.
그러나 지금의 고향은 마을의 신앙이었던 당나무 한 그루를 베어내 길을 넓혔고 상수도를 설치하면서 우물도 덮어버렸다. 고사도 지내지 않고 풋굿도 하지 않는다. 골목길도 도랑을 복개하여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콘크리트길로 넓혔고 화난을 다스리기 위해 빗물을 가두어 놓았던 지당도 모기떼가 번식한다고 메워버렸다.
조상들의 예지가 돋보이던 마을 문화가 시류에 밀려 흔적마저 없다. 산은 거기 있어도 사람들도, 마을도, 들도, 하천도 옛 모습이 아니다. 시대정신을 쫓아 세월을 사는 사람들로 인해 정서가 메마르고 자연과는 조화롭지 못하다. 들판은 농약에 오염되어 밭도랑에는 폐수가 흐르고 생태계가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
옛 고향은 자연이 사계절을 섭리했고 사람들은 절기의 순리를 따라 살아갔다.
달빛이 교교한 여름의 만월 밤이면 당나무 꼭대기에서 소쩍새 한 마리가 빈 하늘에다 시간을 세워두고 애절하게 울어대며 초혼하면 별들은 정령이 되어 반짝였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고 육신과 영혼이 자라난 고향 땅은 요즘 병들어 신음하고 있다. 도시의 밤은 적막 속으로 깊어 가는데도 고향 생각에 잠이 쉬 오지를 않는다.
남진식/사이프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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