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입학 사정관: “점수는 좀 낮은데 아버지가 서울대 출신인데 어떻게 하지요?”
서울대 고참 입학 사정관: “점수가 너무 낮지 않으면 합격시켜 주세요.”
서울대학에서 매년 입학시즌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한국사회에서는 어떻게 반응할까?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미국에서는 Legacy 제도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듯 받아들여지고 있다.
Legacy 제도란 대학 지원자 가운데 부모나 조부모가 그 대학을 졸업한 경우 그 점을 입시에 참작하는 제도다(Legacy 제도는 형제나 친척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학생들의 합격률은 그렇게 들어가기 어려운 아이비리그 대학조차 30%를 훨씬 웃돈다. 하버드대의 경우 전체 합격률이 10%도 안 되는데 비해 Legacy의 합격률은 40%나 된다. 요즘같이 대학 입시가 어려운 때에 이와 같은 합격률은 놀랍기만 하다.
이에 대해 하버드 측에서는 Legacy 합격자들이 다른 합격자들에 비해 성적이 미달되지 않는 아주 우수한 학생들이었다고 설명을 했다. 하지만 미국 교육부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합격한 Legacy 학생들의 평균 GPA와 평균 SAT 점수가 다른 합격생들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Legacy 하나로만 합격 통지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 입시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1920년대에 몇몇 아이비리그 대학에서 시작한 Legacy 제도는 현재는 명문대를 포함한 대부분의 대학들이 당연하듯 쓰고 있다. 수십년 전에만 해도 미국 대학에 다니던 학생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태어난 백인들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제도가 얼마나 백인들에게 유리한 것인지 알 수 있다.
일부 비평가들은 Legacy 제도를 백인 부유층을 위한 어퍼머티브 액션이라고 비약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명문 대학들이 이를 지지하며 하버드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하버드대 전 총장이었던 로렌스 서머스는 재임 당시 드러내놓고 Legacy 제도를 지지했었다.
Legacy 제도를 유지하는 데는 전통을 이어가자는 이유도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크다. 특히 사립대학인 경우 더하다. 미국은 기부를 한다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는 나라이다. 대학들은 모든 졸업생이 기부하기를 끊임없이 요구하며 졸업생들은 모교의 발전을 위해 자신이 졸업한 대학에 기부를 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라고도 생각한다. 대학과 학생과의 관계는 학생이 졸업한 후에도 끊임없이 유지된다. 보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졸업생 자녀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입학의 기회를 주는 것을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제도가 있음으로써 많은 학생들이 입학조건을 다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공평하게 불합격하는 현실은 아쉽기만 하다.
2004년 8월 부시 대통령이 대학 입학의 공정성에 관한 연설 중 Legacy 제도를 폐지하자고 한 바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부시 자신이야말로 Legacy 제도의 이득을 톡톡히 본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부시 대통령의 경우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예일대 출신이다. 부시 대통령이 고등학교 때 받은 SAT 점수는 영어 566 수학 640점으로 총점 1,206점이었다(당시는 SAT 점수가 1,600점이 만점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그 점수로 예일대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은 Legacy 제도 덕분이었다. 놀랍지 않게 부시의 딸인 바바라 부시 역시 몇 년 전 예일대를 졸업했다. 대학 입시에 Legacy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있는 예라 할 수 있겠다.
Legacy 제도는 이민 역사가 길지 않은 한인들에게는 도움이 되는 제도가 아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이 제도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 좋은 소식은 UC 계열은 Legacy에게 이익을 주는 제도를 2000년부터 폐지했다는 것이다.
이정석
<하버드대 물리학 박사,
아이비드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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