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정오를 전후로 한 몇 시간, 한국과 미주 한인사회의 눈길은 온통 LA로 쏠렸다. BBK 주가 조작사건의 핵심인물 김경준씨가 며칠 전 한국으로 압송되고, 며칠 후면 한국 대선 후보등록이 마감되는 미묘한 시점에 그의 누나인 에리카 김씨가 기자회견을 자청했기 때문이다.
회견장에는 미주 한인언론, 한국 언론 뿐 아니라 미 주류 언론들까지 진을 쳤지만 에리카 김씨는 끝내 나타나지 않고, 김경준씨의 부인이 회견문을 낭독하는 것으로 끝이 났다. “뭔가 큰 게 터지는 게 아니냐?”며 긴장되었던 분위기는 맥없이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지난 몇 달 ‘김경준’ ‘에리카 김’ 이름이 한국 신문에 안 나온 날이 없는 것 같다. 한인사회에서는 “미주 한인이 한국대선에 이처럼 영향을 미치다니 대단하다”는 씁쓸한 농담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들 남매를 이런저런 경로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안됐다. 그 똑똑한 젊은이들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불쌍하다”는 반응이다.
이들 남매, 정확히 말하면 누나인 에리카 김씨가 처음 한인사회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90년대 초반이었다. 4.29 폭동 이후 어수선한 한인사회에서 봉사를 자처하고 나선 새내기 변호사 김씨는 누가 봐도 어여쁜 1.5세였다.
코넬, UCLA 법대를 거친 재원인데다 한국말 영어 모두 완벽하고 민족적 뿌리의식까지 투철한데다 얼굴까지 예쁘니 1세들 보기에는 더 할 나위 없는 차세대 재목이었다. 한인사회 인사들은 “똑똑한 2세들이 보통 한인 커뮤니티에 나타나기를 꺼리는 데 (에리카는) 저렇게 열심이니 참 기특하다”고 칭찬을 하곤 했다.
그런데 “책상 하나 놓고 변호사 일만 할 타입은 아니더라”는 것이 그를 가까이서 본 사람들의 의견. 자그마한 외모와는 달리 야심이 대단하고 인맥관리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였다.
가장 초기의 예가 자서전 출판. 변호사로 한인사회에 발을 들여놓은 지 몇 년 되지도 않은 1995년 자서전(‘나는 언제나 한국인’)을 펴낸 것만 해도 보통이 아닌데 더욱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출판기념회였다.
서울 힐튼 호텔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이명박 현 한나라당 후보를 비롯, 정계인사들 200여명이 참석했다. 무명의 젊은 변호사 출판기념회치고는 비정상적일 정도의 호응이었다. 당시 축하 케이크를 같이 자른 이명박씨가 후원자였다는 소문은 이후 김경준씨와 동업자 관계가 형성되면서 더욱 사실로 굳어졌고 이들 남매는 한동안 승승장구 했다.
이민 1세 부모들의 ‘모델 자녀’였던 이들 남매가 동시 추락을 하고 있다. 초등학교때 이민 온 이후 일등을 놓친 적이 없고, 줄줄이 명문대학을 나온 남매 중 동생은 감옥에 갇혔고 누나는 캘리포니아 변호사직을 반납한 상태이다.
“UCLA 대학원 시절, 나는 그야말로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 일주일 168시간 중 132시간을 공부에 투자했고 … 나의 한계에 도전한 내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나는 언제나 한국인’중에서)으로 얻어낸 성취가 물거품이 되고 있다.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에 이들 남매가 빠진 것 같다. 너무 똑똑해서 너무 겁 없이 욕심을 부린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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