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하/ 라구나우즈
한국일보 11월20일자 오피니언‘논단’에 실린 민경훈 위원의 ‘김경준과 언론’을 읽으면서 한 언론인이 보여주는 지성과 상쾌한 논조에 마음이 개운해졌다. 임기 말 퇴폐현상과 대선정국의 과열 속에 벌어지고 있는 갖가지 현상의 먹구름을 뚫어 오랜만에 푸른 하늘을 엿보게 하는 글이었다.
김경준의 귀국을 계기로 언론이 보인 초기의 대응은 솔직히 무비판으로 규탄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의 귀국이 대선에 파탄적인 귀결을 초래할 것이라는 논조가 그랬고, 그가 지니고 온 문서가 특정 후보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것이라는 설익은 점괘가 그랬고, 그의 누이 에리카 김이 LA에서 회견을 하고 나면 사태는 급변할 것이라는 억지가 그랬다. 이런 보도를 지켜보면서 판단을 못할 뿐더러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는 오늘날 한국의 비극을 언론이 앞장 서 주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참담한 심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강제송환을 요구하는 한국 검찰의 문서가 영문법상 엉터리라는 트집까지 동원해서, 미국 법망을 수년에 걸쳐 매끄럽게 드나들던 그 천재가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갑자기 자진 귀국의 길을 선택하기에 이르렀는지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시시한 얘기니 덧붙일 말이 없다. 하지만 그 범죄인의 송환을 둘러싸고 언론들이 벌인 북새통을 보면서 남의 일 같지 않아 구슬프기만 했다.
언론은 사람들이 사물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무분별한 자들의 허위를 가려내는 슬기를 길러내는데 이바지해야 한다. 이런 힘과 능력은 지성의 드높은 향기 속에서만 배양된다. 오늘의 정치인들에게 이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라면, 우리가 언론에 기대하는 애틋한 정은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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