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맞는 체계적인 훈련시켜야

“DO IT YOURSELF.” 문자 그대로 남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한다는 뜻이다.
수백년 전 미국인들이 신대륙을 개척할 때에는 지금처럼 완성된 집을 살 수도 없었고, 수퍼마켓에 가서 이미 준비된 식품을 사먹을 수도 없었다.
거처할 집을 마련하는 일이나 식구들이 먹을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나 스스로 준비해야 생존이 가능했던 시대를 살았던 것이다.
이렇게 생존의 조건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체험에서 유래한 이 혼자 하기의 정신이 요즈음 같이 돈만 내면 필요한 물건과 서비스를 다 얻을 수 있는 세상에서도 아직 건재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이다.
주말마다 DIY를 실천하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홈디포의 비즈니스가 이 신기한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혼자 하기가 아직도 인기 있는 생활방식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의 힘으로 일을 마침으로써 경비를 대폭 줄일 수 있다는 점과, 필요한 작업을 완성한 후에 성취감, 만족감, 자신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경비절약과 성취감이라는 두 가지 이득을 내세우기 전에, 혼자 하기는 태어날 때부터 인간이 지니고 있는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살 된 아기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어른들이 쥐고 있는 숟가락을 빼앗아 스스로 음식을 떠먹으려고 하는 것이나, 서너 살 된 아이들이 기어코 운동화 끈을 혼자서 매어보려고 애쓰는 모습이 바로 혼자 하기가 인간 본성에 내재한 특성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혼자 하기의 이점에 대해서 이렇게 길게 서론을 늘어놓은 것은, 세월이 갈수록 자녀 교육에서 혼자 하기의 훈련이 사라지고 있는 유감스러운 현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장래에 세파를 잘 헤쳐 나가면서 만족스럽고 보람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어렸을 때부터 혼자 하기의 습관을 심어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넉넉히 혼자 할 수 있는 일을 아이가 힘들어 한다고, 귀찮아한다고 부모가 대신 챙겨주다가는, 결국 타고난 독립심과 도전정신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문제해결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 창의성까지 죽여 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녀들의 혼자 하기 능력은 공부 잘하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스스로 숙제를 하고, 복습을 하고 예습을 할 줄 아는 학생들은 구태여 남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도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
혼자서 공부할 줄 아는 학생들은 도전적인 문제에 마주쳤을 때 여러 가지 해결법을 시도하며, 그러는 과정에서 잠재해 있던 창의력이 발휘되면서 의외의 해결방법을 발견하는 희열을 경험할 수 있다.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익힌 학생들은 또 어떤 부분에서 남의 도움이 필요한지,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 어떤 방법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도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다.
혼자 하기의 훈련은, 자녀의 나이에 맞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고, 부모의 도움과 지도가 따라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아무리 혼자 하기가 중요하다고 해도 나이가 덜된 아이에게 운전을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혼자 하기에서 얻을 수 있는 경비절약과 성취감이라는 두 가지 큰 이득은 집수리와 같은 실생활 문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자녀들에게 혼자 하기 능력을 심어준 부모들에게도 이 두 가지 혜택은 똑같이 적용된다고 말할 수 있다.

김순진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