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는 평화의 날이다. 그러나 평화를 갖지 못 할 때 어떻게 평화를 말 할 수 있겠는가?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지난 수세기 동안 평화를 알지 못 한 채 살아가고 있다.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는 분쟁과 무기경쟁의 악 순환 속에서 불안한 평화를 경험하고 있으며 한국은 그 한 예 이다.
또한 어떤 지역에서는 강요된 평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 이다. 매일 살인자들의 기사를 읽어야하며 도난방지 장치를 하고도 평안히 잠들 수 없다. 도처에 생존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데 평화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서와 북의 사람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동과 남의 사람들에게도, 누르는 자와 눌림을 받는 자에게도, 부유한자와 가난한 자에게도 그리고 빈손과 빈 가슴의 소유자에게서도 평화는 진실하게 갈망되어지고 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우리는 새삼 긴박감 속에서 평화에의 갈망을 느낀다. 그러나 천사들의 평화의 노래 소리를 들을 때마다 우리는 오래되고 깊은 예언자들의 음성을 회상하게 된다. 그들은 평화의 왕이 오시는 기대 속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렸다. 스가리아는 말한다.
“그이는 전쟁의 증표를 파괴해 버릴 것이고 모든 나라들을 향해 평화를 전할 것이며 땅 끝까지 지배하게 될 것이다.”
평화는 이 크리스마스에 이미 우리에게 약속 되어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손쉽게 흔쾌히 주어지지 않는다. 크리스마스의 왕이 주실 평화는 이사야가 안전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한 것처럼 정의와 공평의 열매이다.
그이는 단 하나의 인간성을 창조하시고서 평화를 이루시기 위해 그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기독교인은 십자가의 고난에서 얻어 낸 평화의 대가를 저하시킬 수 없으며 그것을 보다 공평하게 나누어 갖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예언자들에 의해 약속되고 천사들이 전해준, 그리고 마리아의 아들에게서 보여진 이 평화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마음의 상태뿐 아니라 넓게는 정치적인 평화까지도 포함 한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에 관한 가장 기쁜 소식은 그와 같은 평화가 오늘 바로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평화는 만질 수 있고 접할 수 있고 철저하게 믿을만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이 세상의 삶 속에서 마음 상하시고 괴로워하시는 하나님의 고통에 동참함으로써 평화의 열매를 맺어 가려는 아름다운 이웃들에게서 증언되어지고 있으며 사랑과 신뢰의 공동체들이 그 가능성을 입증하고 있다. 이에 새로운 씨앗들이 자라남으로 기필코 평화는 이루어 질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이고 하나님의 응답이다.
이 기쁜 성탄절 우리에게 평화를 선사해 주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린다.
황익수 전 YMCA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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