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사회부 기자들이 올 한해 취재 뒷이야기들을 나누며 2007년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은호 기자>
“버텍 총격·아프간 인질 등 충격의 한해”
2007년 한해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넘어간다. ‘다사다난’이라는 상투적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고 해야 할 만큼 올 한해는 정말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들이 많아 사회부 기자들이 밤늦게까지 편집국을 지키며 일을 해야 하는 날들이 부지기수였다. 지난 1년 동안 뉴스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가 일선을 누볐던 사회부 기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취재수첩에 담아놓았던 못 다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올 한해를 정리해 본다.
“범인 조승희” 발표에 “한인이라니…” 기자들도 망연자실
서라벌 식당 총격·남편 살해 사건 등은 가정 돌아볼 계기
서해안 기름유출 재앙에 성금 발벗고 나서 뿌듯한 연말
-올해는 버지니아텍 총격 참사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방북, 한국 대선까지 역사에 획을 그을 만한 대형사건과 굵직한 뉴스들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그만큼 사회부 기자들에게는 바쁜 한 해였는데요. 올해 한인들에게 가장 큰 충격과 영향을 준 뉴스라면 어떤 것을 들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버지니아텍 총격사건이 아닐까 싶네요. 사건 당일 대학 캠퍼스에서 무려 32명의 무고한 생명이 괴한의 총격에 희생당했다는 소식이 타전된 후 범인이 아시안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면서 편집국에서는 ‘혹시 범인이 한인은 아니겠지…’ 하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왔었는데 범인 이름이 ‘조승희’라는 발표가 나오자 충격은 더욱 컸습니다. 이 사건은 미주 한인들로 하여금 이민가정의 문제점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했고 주류사회 역시 총기규제 논란에 휩싸이는 등 미국 사회 전체가 후폭풍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한국의 분당 샘물교회 소속 젊은이 23명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선교를 떠났다가 탈레반에 납치돼 2명이 살해당한 사건은 한국과 미주 한인사회, 그리고 기독교계에 영원히 잊지 못할 악몽으로 남을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LA 지역 일부 대형 교회들의 해외 선교파송 경쟁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선교단 대부분이 무사히 풀려나긴 했지만 일부 기독교계의 무분별한 위험지역 선교에 경종을 울렸습니다.
-역시 본국과 관련된 뉴스지만 연말까지 이어진 대선 정국은 미주 한인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뉴스였죠. 결과는 물론 이명박 후보의 압승으로 다소 싱겁게 끝나긴 했지만 남가주 출신 한인인 김경준씨가 연루된 BBK 의혹 공방이 선거일까지 이어지면서 미주 한인들의 관심은 더욱 컸던 것 같습니다. 김경준씨 가족이 LA에서 의혹을 밝히겠다며 기자회견을 가진 날에는 한국의 뉴스 매체 특파원들이 모두 몰려와 취재경쟁을 벌이는 통에 회견장 앞이 한때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죠.
-올해 본보가 특종 보도한 교양만화 ‘먼나라 이웃나라’ 유대인 비하 파문은 한인 이민 커뮤니티가 다민족 사회인 미국에서 커뮤니티간 관계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갖고 대처해야 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다행히 LA 한인들이 한국과 유대인 커뮤니티의 중간에서 중재자 역할을 잘 해 별다른 불상사 없이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감사의 표시까지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올 한해는 이민국의 결정 한 마디에 영주권을 기다리는 많은 한인들이 웃다가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름에 취업이민 3순위 영주권 문호 등을 활짝 열어놓자 화색이 된 한인들의 영주권 서류가 폭주했지만 이민국은 이내 곧 영주권 문호를 닫아버리는 졸속정책을 폈습니다. 이 때문에 한인들은 차라리 문호가 열리지 않았다면 폭주도 없고, 적체도 없었을 것이라며 핏대를 높인 채 하염없는 영주권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해도 남가주 한인사회는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각종 신분도용 및 금융사기로 얼룩졌습니다. 대부분 2000년대 초반 부동산 호황기에 시작된 사기들로 융자심사가 허술해진 틈을 이용해 도용한 신분으로 서류를 제출하거나 서류를 허위로 꾸며 융자를 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서브프라임 파동 이후에 연방 수사기관들이 융자사기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한인사회에도 파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 쥐도 새도 모르게 자신의 신상정보가 유출돼 크고 작은 금전적 피해를 당한 한인들에게 ‘방심은 절대 금물’이라는 교훈을 남겼죠. 새해에는 아무리 바쁘고 귀찮더라도 몇 달에 한번은 본인의 크레딧 기록을 꼼꼼히 점검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겠습니다.
-2007년 한인들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은 서라벌 식당 총격 살인사건과 기숙영씨가 남편을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라고 생각됩니다. 두 사건 모두 가정문제가 살인과 자살로 치달은 경우여서 한인들의 갈등해소 방식이 성숙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감정폭발’과 ‘총기’라는 최악의 조합이 비극으로 이어졌는데요, 한인들 사이에도 총기 소유가 일반화 되는 만큼 총기 사용과 안전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올해 LA 총영사관과 한인회 사이에 관계가 삐거덕거린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인사회의 리더들 사이에 가시 돋친 설전까지 오가는 모습은 많은 한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습니다.
-한인사회의 정치적 에너지는 다소 약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인사회를 결집할 만한 뚜렷한 이슈나 큰 선거가 없었고 정치 단체들의 활동도 예년보다 소극적이었습니다. 이민법 개혁이 무산됐고 미국 정치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이 주요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5월에는 LA지역 이산가족들이 북한을 방문해 분단 반세기만에 가족들을 만나는 뜻 깊은 일이 있었습니다. 동행 취재기자로서 북녘 땅을 밟아본다는 개인적인 의미도 있었지만 50년이 넘도록 생사도 모르고 지내던 가족들이 재회하는 감동적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기억은 영원히 가슴 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올해는 유독 큰 산불들이 많이 발생해 한인들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10월 발생한 샌디에고 산불은 한인들이 밀집한 지역에도 많은 피해를 입혀 지역 주민들이 대피하는 등 큰 혼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재해 소식을 전해들은 LA 지역을 비롯한 남가주 전체 한인 커뮤니티의 온정의 손길이 물밀듯 답지해 피해를 입은 한인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서해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유조선 기름 유출사고는 파괴된 일대 청정해역 복구에 수십 년이 걸릴 만큼 큰 대재앙이라는 소식에 많은 미주 한인들이 마음 아파하며 피해자 돕기에 동참에 본보에 성금을 보내주시고 있습니다. 올해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처럼 본국에서는 미국에서든 동포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발 벗고 나서 돕는 모습을 보며 따뜻함으로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새해에는 가슴 아픈 비극이나 충격적 사건들보다는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뉴스와 스토리들을 더욱 많이 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참 석 자
김정섭 부국장대우, 구성훈·김종하 부장대우, 이석호·김동희·심민규·김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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