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중순의 서울은 성탄시즌에다가 마침 대선 막바지여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전보다 훨씬 좋아진 거리 환경과 사방에 높이 솟은 많은 고층 건물들은 3년만에 고국을 찾은 필자의 마음을 뿌듯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번 한국 방문은 ‘한국어진흥재단’의 내년 계획들을 관계 당국 및 후원기관과 협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어진흥재단’의 역할은 물론 그 존재조차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하기야 재단이 설립된 지 14년이 지난 이 곳에서도 잘 모르고 있으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앞으로 재정적인 토대와 훌륭한 이사들을 영입하기 위해서는 국내외적으로 적극적인 홍보활동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미국 내 공립 초중고교에 한국어반을 개설하고 유지시키며 여름방학 중에는 미국학교 교장과 한국어반 교사 및 학생들을 한국으로 데려가 현지 교육시킨다는 설명에는 모두가 놀라워했다. 외국에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보급시키는 것이야말로 국가적 사업이며 상품 수출보다 중요한 한류이자 한국의 세계화에 으뜸이 되는 일인 것이다.
하물며 세계에서 제일 영향력이 크고 한인 동포가 가장 많이 거주하는 미국에서는 말할 나위없다.
바쁜 일정 속에 염려했던 문제들이 해결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져서 비록 싸늘한 날씨였지만 주말을 이용하여 거리에 나섰다. 무엇보다도 이참에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인사동 거리를 둘러보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출발하여 종로 입구를 거쳐 파고다 공원까지 걸어간 다음 인사동 길로 접어들었다. 인사동 거리는 기대를 너무 많이 했던 연유일까, 처음부터 실망이 컸다.
초입에 스타벅스 커피샵이 자리 잡고 있을 뿐 아니라 한참을 걸으며 눈을 크게 뜨고 살펴봐도 한국에서 가장 한국적인 것들이 많다고 알려진 그 곳에는 더 이상 한국의 토속 물건이나 전통 예술품들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어느 시장바닥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싸구려 잡동사니와 중국산 모조품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였다. 그 곳을 처음 찾아온 사람에게조차 볼만한 것이 정말 이렇게도 빈약하단 말인가?
한동안 인사동 거리 한 복판에서 한국을 잃어버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생각하느라 두리번거리며 서 있었다. 그곳을 빠져 나와 허탈한 심정을 달래려고 실로 반세기만에 창덕궁(비원)을 찾아갔으나 겨울철에는 일찍 문을 닫는다고 해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호텔로 되돌아오면서 한국은 외형적으로 현대화는 되었으나 국민들의 의식과 철학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구나, 아니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의 어설픈 서구적 언행이 마치 이방인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은 선거일 저녁이었다. 이륙시간이 조금 지나 비행기가 정상고도에 진입하자 기장은 이명박 후보의 우세를 방송해 주었고 이내 확정적이라는 말을 들려주었다. 승객들은 이미 예상이라도 했듯이 말이 없고 무표정한 얼굴들이었지만 어찌 마음속에 느낌조차 없었을까.
이명박씨는 서울시장 재직 시 이룩한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망의 쇄신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말을 듣는 소신과 추진력을 갖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길게는 해방 후부터, 짧게는 지난 10년간 지리멸렬 상태에 놓여있던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우고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국민들의 사상과 가치관을 회복시켜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란 신뢰가 갔다.
그래서 한국의 중심지인 서울에서 우리 것을 잃어버리고 배회하는 슬픈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기대감에 편안히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조만연
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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