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식 셀폰을 통해 나를 깨달아
“제발 선생님, 그 골동품 셀폰 좀 바꾸세요” “왜? 내 셀폰이 어때서?”
“너무 오래되고 커서 무겁지도 않으세요?” 제 셀폰은 제 학생들 사이에서 상당히 유명합니다. 백인 학생이나 한인 학생을 막론하고 제 공룡시대 셀폰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학생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말 제 셀폰을 애지중지합니다. 6년을 한결같이 부서지지도 않고 40마일 멀리나, 130마일 떨어진 LA에서 잃어버려도 항상 제 품에 돌아오는 이 셀폰은 제 베스트 프렌드와 같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이 자리에서 말씀드리자면 새 셀폰은 제가 쓰기 쉽기 때문입니다.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저는 이 셀폰의 기능을 다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연전에 플렌을 바꾸면서 새 셀폰기를 공짜로 얻었습니다. 정말 날씬하고 가벼우면서도 색깔도 예쁘고 최신형이었습니다. 주위의 간곡한 부탁으로 셀폰 뒤에 있는 정보칩을 바꾸어 며칠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정든 셀폰을 버리기가 무엇해서 자식들 몰래 제 책상 서랍에 소중히 간직해 두었습니다. 그런데 이 새 셀폰은 제 손에서 매끄럽게 빠져 나가 제가 놓치기도 했고 너무 작아서 찾기도 힘들고 그래서 부서질까 봐 무서웠습니다. 거기에다가 제가 한번도 보지 못한 여러 가지 기능이 추가되어 있어서 설명을 들으면서 그냥 왜 제가 이런 복잡한 상황에 오게 되었는지 얼른 소개가 끝나기를 바랐습니다. 무엇이 부족해서 아직도 구형에 대해 다 모르는 제게 더더욱 복잡한 것을 주고 배우라고 하는지 제 머리가 시큰거려 왔습니다.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칩을 바꾸어서 옛 셀폰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선생을 할 때부터 저는 최신의 시청각기기를 다루는 선수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미국에 와서도 포트란, BASIC 프로그램으로부터 컴퓨터 포비아를 없애주는 교육가가 되겠다고 공부를 한 제가 지금은 컴퓨터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더더욱 모르게 되었고 무슨 팝업이 뜨거나 메시지가 뜨면 겁부터 나는 컴맹이 되었습니다. 저는 한 달 전에야 텍스트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나서 2002년부터 받은 텍스트 메시지를 읽어 보면서 눈물도 흘리고 배꼽을 잡고 웃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공룡시대의 셀폰을 쓰고 구형 가전제품을 여전히 쓰고 있으면서 선생이라고 하는 것이 부끄러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선생(先生)이란 ‘먼저 태어난 사람’으로서 모범이 되고 본보기가 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경험이 많아서 지혜롭고 박식하여야 하는데 저는 거꾸로 학생들에게 새로운 기기에 대해서 묻기나 하고 다시 배워 달라고 조르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테크놀로지가 발전할수록 저는 후진을 빠르게 하고 있었고 이는 바로 나이가 든다는 실감을 하게 해 주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가시는 분들 중에 최신의 기기에 전혀 어려움이 없이 젊은 사람들보다 더 잘 대처하고 이용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만 저는 그것이 어렵습니다. 왜 좋은 머리를 갖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노력을 안 하느냐고 꾸짖으시겠지만 이제는 좋았던 머리가 정말 좋았던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저는 구형이나 구식을 선택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사이에 눈이 더 어두워졌고 어느 사이에 새로운 신조어가 자꾸 늘어 가고 어느 사이에 기억력을 조금씩 잃어가는 이 선생은 생각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골동품의 가치에 대해 더욱 연구하고 골동품의 귀중함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말입니다. 그 골동품 속에는 저보다 앞 서 이 세상을 뜬 모든 분들과 함께 그 분들의 가치가 들어 있고 또한 더욱 중요한 이유는 가장 최신의 것들이 태어난 고향은 바로 골동품이라는 이유를 알아내었기 때문입니다. 그 생각을 한 뒤부터 저는 골동품 선생이 된 것이 자랑스러워졌고 골동품 셀폰은 여전히 ‘아리랑’음악을 울리고 있습니다.
정 정선
<시인, UC Santa Barbara 한국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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