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집 창가에 은행나무 한 그루 서있었는데
가지 하나가 담장을 넘어서고 있었는데
마치 그건 고양이 울음 같았는데
이러면 안돼, 이러면 안돼
나무가 잎을 피워내는 동안 우리도
무엇에 자꾸 부풀어가고 있었는데
꼼짝할 수 없는 움직임도 있었을까. 나무에게는,
허공과 허공과 허공에
잎을 건네며 무엇을 말하려하는 동안 우리도
무엇을 자꾸 말하고 있었는데
은행나무 안에는 짐승이 살고 있어서
뿌리가 뿌리를 흙투성이로 덮치는 순간 열매를 맺는다는
그런 말, 입에 구린내를 풍기며 했을 것인데
언제였는가 은행나무
가지에 그의 울음소리 주렁주렁 맺혔다가 떨어지는
하루, 속절없이 바라보던 때
그렇게 은행잎 눈앞에 쏟아지던 때
이성목 ‘은행나무에 관한 추억’ 전문
은행나무는 겉씨식물로 암수가 딴 그루다. 그러므로 담장을 넘는 창가의 은행나무는 바람난 이미지로 읽히고 있다. 고양이 울음 같다는 것이나, “이러면 안돼. 이러면 안돼” 하면서 나무 잎을 피워낸다는 진술로 미루어, 이름다운 연애의 기억은 필시 아니다. 더구나 맺어도 악취를 풍기는 것이 은행의 열매 아니던가. 은행잎 쏟아져 내리는 것을 보며 문득 한 때의 사랑을 아프게 떠올렸음직하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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