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나 소개받은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며 흔히 남기는 말 1순위가 “우리 언제 만나 밥한끼 같이 합시다”라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불명예스럽게도 가장 지켜지지 않는 약속 1순위이기도 하다.
LA공항에 첫발을 디딘 지 올해로 어언 만 40년째다. 그후 세계 각국에서 생활하다 최근 다시 미국에 건너온 후 충격을 받았다. 그 충격은 외부조건이나 환경 때문이 아니었다. 원인은 엉뚱한데 있었다. 나는 일생 기독교인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교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다. 친구들이나 아는 이들 100명 중 90은 교인, 그것도 같은 교단 사람들이다.
미국에 돌아와 처음 한인교회에 갔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곳에는 동기 동창생들을 비롯해 학교 선후배, 유학 초기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 이민 초창기부터 고생하며 정들었던 분 등등 낯익은 모습이 수두룩했다. 내가 소속된 교단은 딱히 같은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바람편으로 서로의 근황을 접하며 지내는 처지다. 그런데 그날 나는 완전 외계인이었다. 차갑고 서먹할 뿐 이었다.
다시 돌아 와 정착에 어려움을 겪던 기간중 한 형제라고 입버릇처럼 힘주어 말하는 신앙인들 중 아무도 내게 전화 한 통 걸어 “집 마련은 어떻게 돼 가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혹시 우리가 도울 일은 없는지” 인사치레로라도 물어오는 이가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 자신의 치부를 들춰 보이는 것 같아 부끄럽기까지 하다.
사람들이 밥 한끼 같이 먹자거나 살갑게 아는 체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리 대단한 충격이 아니다. 다만 정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 빼면 허수아비’라는 우리 민족이 점차 나와 너 사이에 경계선을 긋고 이웃의 일에 나 몰라라 고개 돌리는 세태가 서글플 따름이다.
그리고 더 한심한 것은 공수표일 지언정 “우리 언제 만나, 밥 한끼 같이 합시다”라고 살갑게 인사 건네는 친구 하나 옆에 두지 못한 채 세월만 허송한 나 자신이다. 그런 주제에 공연히 죄 없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비라니, 부끄러울 뿐이다.
배시언/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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