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촌(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 - 한암 스님
“서릿국화 설중매(雪中梅)는 겨우 지나갔는데 어찌하여 오랫동안 모실수가 없을까요. 만고에 변치 않는 늘 비치는 마음의 달. 쓸데없는 세상에서 뒷날을 기약해 무엇하리” -한암 스님이 경허스님에게.
경허 스님은 생불(生佛)로 불리는 구한말의 선사이다. 우연한 인연으로 나의 가슴 속에 깊이 자리 잡은 스님이기도 하다.
몇 년 전 나를 세례 주신 김세을 신부님과 호형호제하는 한 스님을 만나 나의 어머니, 동생들이 모두 가족처럼 지내게 되었다. 그 스님이 나의 집에 들른 날 꿈을 꾸었는데 나의 집 뒷마당에 윤기가 번쩍번쩍하는 집채 만 한 검은 소가 펄펄뛰었다. 그 생동함과 활력이 대단하여 범상치 않은 꿈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서 스님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스님이 존경하는 경허 스님의 이름이 비어있는 거울과 깨우친 소라는 뜻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는 인연에 의해 가톨릭이 되었지만 나의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신자이시다. 절에 가기를 즐기시는 어머니는 어렸을 적부터 새벽이면 불경을 외우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경상도에서 농사지으시는 외삼촌은 유교식으로 모든 엄격한 절차를 밟아 절을 하시고, 고모들은 불경을 외우고, 신부님은 가톨릭 장례절차를 밟으셨다. 정작 병원에서 투병하시던 아버지께서는 고모와 어머니의 간절한 청에도 불구하고 돌아가실 때까지 신부님과 스님의 방문을 거절하셨는데 꼿꼿이 앉아 통증을 견디시던 모습을 보며 참 멋진 인간이구나 싶었다.
자식이 가톨릭이 되어도 원래 무심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는 별 신경 안 쓰시며 절에 다니시고 스님이 집에 들르시는 날이면 아들이 온 듯 얼굴에 웃음이 환해지신다.
4형제 모두 예술가가 된 게 엄마로서는 대단히 못 마땅하기도 하고 가엾기도 한 모양이시다. “내가 뭘 잘못해서 애들이 다 저 모양일까” 하는 눈치이시다.
친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내심 부러워하신 게 있었는데 고모들이 큰돈을 들여 영도천가를 해 주신 일이었다. 할머니 영도천가를 보고 오셔서는 자식들을 믿느니 스스로 하는 게 낫겠다 싶으셨는지 자신의 영도천가를 위해 시주를 시작했다고 하신다. 아들처럼 귀히 여기시는 스님을 뵙자 안심이 되시는 모양이다.
정작 자신의 아버지의 임종도 못 하고 속가의 어머니도 떠나오신 그 스님은 인연 따라 만난 우리들을 가족처럼 대하시는데 지금은 동해바다 가까이 어느 토굴에 계신다고 동생이 전한다.
경허, 만공, 한암, 수월, 혜월 - 그 스님 덕분에 한국불교에 흐르는 선맥에 접하게 된 나는 그 선맥이 직통(?)으로 이어지는 절에 또 인연 따라 들르게 되었다. 어릴 적 친구의 젊은 시절 스승이었던 숭산스님의 제자 무량스님이 손수 지으신 태고사에 거듭 두 번을 들르게 되었다.
LA에서 북쪽으로 2시간 반쯤 가는 사막 한가운데 아름다운 한국 절을 지으신 무량스님은 태양열을 이용하여 전기를 자급자족 할수 있도록 하셨다는데, 경허스님, 만공스님, 고봉스님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아름다운 절의 벽과 나무기둥의 조화, 보석처럼 아름다운 대웅전, 푸른 돌(벽암)을 뒤로하고 절경을 이루며 서 있는 절의 아름다움이 놀라울 뿐이었다.
지난달 칼럼을 쓰고 온 몸으로 종을 치는 중국인의 퍼포먼스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예술적 상징으로 온몸으로 종을 치는 것이었지만 그냥 종치는 나무로 치는 게 자연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뜻밖에 주지스님인 원율 스님이 함께 방문한 3명의 친구들과 함께 종을 치라고 하셨다. 종을 치고 그 종소리의 장엄함에 놀라 한참 서 있었다.
달이 환히 떠 있었다. “오직 직진하라(Only go straight)” 라고 친구에게 말씀하셨다는 숭산 스님의 말씀이 종소리가 되어 귀에 들리는 듯 했다.
박혜숙
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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