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고국을 떠나온 한인 사회에서는 설날은 의미가 깊다. 이민생활에 고달픔을 잠시 잊고 온가족이 모여 아침 차례를 올리고 두고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랜다.
어릴 적 기억이 생각난다. 설날 새벽길은 함박눈이 내렸다. 올망졸망한 우리들 사이로 하얀 삽살개도 꼬리를 흔들며 끼어들었다. 재를 넘어 솔밭 길을 돌아 당할머니와 당숙에게 세배를 시작으로 집안 어른들에게 올리는 세배가 동이 트고서야 끝났다.
설빔으로 입은 바지 속주머니에는 세배 돈이 손끝을 간지럽힌다. 그 당시에는 주머니에 손을 넣으면 설렁한 손가락만 부딪치고 먼지만 날던 때이다. 그래서 이다음에 어른이 되어서 가득 채우리라 마음먹었다. 가난이 싫었고 그런 마음이 부끄러워 나도 모르게 꿀꺽 삼켜지던 설움 한 덩이가 목젖을 타고 매어왔다.
더 넓은 세상에서 내일을 맞고 싶어 멀리 멀리 떠나온 타국생활, 이민은 모국을 떠나면서 어떤 명분에도 불구하고 원죄의식 같은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 사치성 이민이든 도피든 가릴 것 없이 모국에 대한 향수에서 해방될 수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
명절 때가 되어오면 귀향에 꿈을 떨치지 못하는 이민자들은 뜬금없이 그리워지는 얼굴들을 한사람씩 떠올린다. 사무치게 엄습해오는 그리움, 그 시절에는 몰랐다. 설마 먼 훗날, 춥고 고단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가슴 아파 하며 눈언저리가 시큰대 올 줄을.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여전히 마음이 허전한 것은 채운만큼 잃은 게 있어서일 것이다. 가난과 슬픔에서 급히 도망치는 동안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던 유년 시절의 하얀 꿈은 바래지고 멀리 놓쳐 버렸다. 정월 초하루 설날, 저마다 마음속 심지를 돋워 등불을 밝혀야 할 시간이다. 서로의 마음을 다독거려 따뜻함을 나눠 가져야 한다.
안주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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