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서의 공연을 마친 후. (왼쪽부터) 쌍둥이 언니 마리아(첼로), 셋째 안젤라(바이올린), 수필가/음악칼럼리스트 이영주씨, 동생 줄리아(피아노)
이영주씨는 세계적인 음악 삼중주단 ‘안트리오’를 밥힘으로 키웠다는 말을 자신의 수필집에서 혹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주 했다. 수필가이자 칼럼리스트다운 하나의 표현이겠거니 했다. 너무 유명한 딸들을 둔 덕에 인터뷰 요청이 많았겠고 주위에서도 어떻게 애들을 그렇게 잘 키웠냐?는 부러움 섞인 질문을 끊임없이 들었을 것이다. 뭔가 색다른 답을 요구하는 이들에게 ‘밥힘’ 이라는 말을 툭 던지고는 김빠진 상대의 얼굴을 보고는 즐거워했을 지도 모른다.
아님 진짜 본론인 다음 대답을 하기위해 미리 한자락 깔아놓는 수법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영주 작가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동안 이 말이 정직한 대답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혼자 힘으로 넉넉지 않게 이국땅에서 3자매를 키우는 동안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혹은 가장 최선의 방법은 늘 맛있는 밥을 정성껏 차려주며 끊임없는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만약 이씨의 대답에 맥이 빠졌다면 그 원인은 오히려 안트리오 자신들의 탓(?)일 것이다.
이미 20년전 타임지가 ‘아시아의 신동’으로 평가한 걸출한 재능은 둘째 치고라도 유명 패션 잡지와 의류 모델로도 나섰던 3자매의 개성적인 외모, 독특하면서도 개방적인 무대 매너, 클래식과 팝의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크로스오버 스타일 등 이들을 잘 아는 사람일수록 왠지 ‘밥힘’이라는 말이 주는 투박함이 이들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설가 최인호씨도 이씨의 수필집 ‘내 인생의 삼중주’ 서문에서 ‘세 딸을 보석같이 세공’했다는 표현을 썼을 것이다.
물론 이씨가 그저 밥만 해주는 우직한 엄마는 아니었다. 신문기자 출신 엄마답게 아이들에게 듬뿍 문화적인 세례를 했다. 기저귀도 떼지 않은 어린 세딸을 데리고 부지런히 연주회며 전시회를 돌아다녔으며 독서는 취미가 아닌 자연스런 생활의 일부였다. 이씨와 안트리오는 언젠가 요요마의 공연장에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연주에 감명해서가 아니라 비싼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가 10년 넘게 들고 다니고 있는 자신들의 낡은 악기 소리와 너무 차이가 나서였다. 물질적인 부족함이 딸들의 음악적인 부족함, 인성의 부족함으로 나타나지 않게 하려고 이씨는 더욱 애를 썼다.
무슨 일이든 기왕 하는 거면 남들보다는 잘 하자는 특유의 승부근성도 발동했다. 연주회가 끝난 후 열리는 파티의 음식도 이씨는 직접 다 준비했다. 줄리어드의 교수들과 학생, 연주회를 찾았던 관객들은 음식의 질과 양에 감탄하며 원더풀, Your mom is so cool!을 연발했다. 고급 연주복과 비싼 악기를 척척 사주는 엄마들보다 안트리오가 이영주씨를 엄마로서 정말 자랑스럽고 고맙게 생각한 건 당연하다. 그래서 이들은 어떤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자신들에게 가장 영향을 줬고 좋아하는 인물로 늘 ‘어머니’를 꼽는다.
막내 안젤라는 한국의 월간지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 자매는 늘 엄마 덕분에 많이 배우고, 많이 보고, 많이 느꼈다. 절대로 안돼라고 말한 적이 없는 엄마 덕분에 독립적인 사람들이 됐고 자기일을 사랑하는 럭키한 아티스트가 됐다라고 했다. 이쯤 되면 어디 가도 자식들 잘 키웠다고 실컷 자랑할 수 있는 자격 있는 엄마가 아닐까.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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