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한국일보 후원으로 18일까지 열리는 링컨센터 김기영 감독 회고전(12~18일) 참석차 뉴욕에 온 김 감독의 장남 김동원씨.
그는 나를 비롯한 두 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천재성을 존경했고 누구보다 훌륭한 감독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며 고인을 회상했다.
회고전 첫날인 12일 ‘하녀’의 상영에 앞서 무대에 오른 김동원씨는 인사말을 통해 뉴욕의 유서깊은 아트시네마에서 아버지의 작품을 보게 되어 영광이며 행사를 마련해준 링컨센터 관계자와 찾아준 모든 관객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김기영 감독의 61년 작 ‘10대의 반항’에 당시의 아역스타 안성기씨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던 아역 배우 출신이다. 영화감독 아버지를 두면 쉽게 영화배우가 될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아버지의 뛰어남이 오히려 자식들을 주눅 들게 했던 면이 있었고 배우로서의 재능이 별로 없는 것 같아 계속 배우를 하진 못했습니다.
김기영 감독은 유명세에 비해 과작이었다. 당시의 감독들은 거의 매년 영화를 양산했지만 제작자를 겸했던 김 감독은 3~4년에 한편씩 작품을 발표했다. 김씨는 늘 힘들게 제작비를 조달하느라 집안 형편은 어려웠지만 항상 의욕에 차있던 부친의 모습을 떠올렸다.
80년 이후 거의 영화계를 떠난 김기영 감독은 90년대 중반이후 젊은 감독들에 의해 재발견되었고 부산영화제의 회고전을 통해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던 중 갑작스런 자택 화재로 부인과 함께 사망했다. 김씨는 두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을 때의 감정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베를린 영화제 초청을 받고 무척이나 기뻐하셨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80년대 광고 프로덕션에서 CF 감독으로 활동했었고 현재는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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