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동포 농가에 비료 보내기 행사가 지난주에 끝났다. 비료 보내기 행사를 열기 몇 달 앞서부터 위원들은 함께 모여 여러 가지 논의를 한 가운데 광고 협찬과 디너 초대장을 팔아서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아침에 회사에 오면 일손은 놓고 누구한테 손을 또 벌릴까 하고 골몰하지만 역시 주변 사람들이 먼저 떠 오른다. 미안하지만 그동안 잦은 모금 운동에 기꺼이 함께 해 주었던 친구들에게 또 호소하는 이메일과 편지 그리고 팩스를 보낼 수 밖에.
며칠을 기다렸으나 아무 답들이 없어서 전화를 했더니 “퍼주기 운동에는 동참할 수 없다” “비료로 농사를 지으면 열매는 다 김정일한테 가는 것 아니냐” 라는 한결같은 거절에 그만 맥이 빠졌다.
멍하니 있으려니 작년 7월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고 울며 불며 외삼촌 식구들을 만났던 생각이 나면서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나는 헤어진 식구들을 그리며 눈물과 한숨으로 한 많은 세월을 보내셨던 부모님을 보고 자라난 이산가족 2세다. 작년 7월 어쩔 수 없이 이산 가족 3세가 된 아들과 함께 엄마 고향인 원산에서 점심을 먹고 또 몇시간 달려 아버지 고향인 함흥에서 한 분 남으신 외삼촌 부부와 함께 아홉 식구들을 하루 밤 만난 적이 있다. 그러다 보니 북녘 땅에서 땅을 일구는 농부를 만나거나 길을 닦는 어린 군인들을 만나거나 누구를 만나도 다 외삼촌 같고 동생 같고 자식과 조카 같은 생각에 목이 메이고 눈물이 앞을 가리곤 했다.
어쩐다지. 다시 기운을 차려서 여기 저기 전화를 하니 고맙게도 “애쓰시네요. 참석은 못해도 조금은 보낼께요” 하면서 10달러, 20달러 또는 50달러씩 보태주었다. 나처럼 이산가족 부모를 두어 자라날 때 일가붙이 하나 없어 설이나 한가위 때에는 참 외로웠다는 뉴욕 올케도 작은 정성을 보내왔고 “김정일은 싫지만 애쓰는 모습을 보고 참여한다”며 여전히 힘이 되어준 이웃 지기들도 많았다. 우리가 보내는 이 비료가 내 외삼촌과 조카 같은 겨레붙이들에게 힘이 되어 좋은 열매를 맺고 나아가 통일을 다지는 비료가 되었으면 한다.
신정란/평통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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