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3월 23일, 100년 전 그날은 장인환 의사가 스티븐스를 저격한 날이다. 한국 외교고문관이라는 직함을 갖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하며 고종을 위협하고 협박했던 스티븐스는 샌프란시스코에 도착, 신문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인들은 일본의 보호 정책을 고마워하고 있으며 그러한 정책은 한국에 유익하다고 말하였다.
노동 이민으로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까지 흘러오게 된 장인환 의사는 이 말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를 저격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장인환 의사는 나중에 진술하기를 스티븐스가 살아 돌아가면 한국은 희망이 없으며 “내 나라가 망하는데 내가 살면 무엇 하겠냐”고 하였다. 그리고는 감옥에서 백인들의 모진 고문을 견디며 10년 넘게 지냈다. 고문으로 나중에 골병이 들었지만 창문도 없고 화장실이나 샤워실도 없는 토굴 같은 감옥에서 초연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오히려 동포들에게 미안해했다.
스티븐스 저격은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보다 먼저 일어났다. 그러니 장인환 의사는 애국지사 1호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아이들이 관심이 있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한 시간을 할애하여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당시 샌프란시스코에서 동양인이 받았던 수모와 멸시, 감히 동양인이 백인을 죽였다는 점 때문에 감옥에서 받은 고문들, 노동일에 힘들면서도 밤이면 교회로 나와 한국에 관한 신문을 읽고 공부하던 장인환 의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자 아이들은 눈빛이 초롱초롱해진다. 그 눈빛에서 같이 분노하고 아파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나는 학생들이 맞춤법이나 문법보다 나의 뿌리, 우리의 뿌리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우리의 뿌리, 역사를 알고 그 뿌리에서 뻗어 나와 얼레에 이어진 연처럼 창공을 자유롭게 날기 바란다.
송일란/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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