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년 전 조선이 어둠속에서 갈팡질팡하며 한 발짝 앞을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헤매고 있을 때 죽음을 무릅쓰고 몽매한 땅에 새 문명과 복음의 씨앗을 뿌린 분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한국은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지고 많은 국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같은 기적은 초기 선교사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885년 4월5일 부활주일 아침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들은 제물포에 내리고 곧 이어 스크랜턴 부인과 아들 의사 선교사가 도착했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아펜젤러와 스크랜턴의 한국 파송을 주도하고 원조를 아끼지 않았던 볼티모어 러블리래인 교회 담임목사 가우처 박사가 있었다.
한국은 이들의 사랑과 희생,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 은혜를 무한히 받았다. 특히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 스크랜턴 부인이 설립한 이화학당 동문들이 마음속 깊이 감사해야 한다. 이 학교 동문들이 뜻을 합하여 ‘보은 음악회’를 워싱턴과 랭캐스터, 그리고 볼티모어에서 가지는 것은 좀 늦은 감이 있으나 너무나 당연한 처사이다. 찬양의 음률이 하늘에 전달되어 하나님에게는 무한한 영광이 되고 선구자 선교사들에게는 진정한 감사의 표현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방은호/ 코리안 콘서트협회 전 회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