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0일 서울 남대문의 1,2층 목조 누각이 방화로 소실되었다. 온 국민들은 억장이 무너진 듯 놀라움과 분노에 휩싸였으며 부모를 잃은 사람처럼 전국 각처에서 찾아와 통곡하고 문상까지 하였다.
그런 심정은 어찌 그들 만에 국한된 것이겠는가. 한국의 관문이라 할 남대문은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도성을 쌓을 때 만든 4대문의 정문으로서 1395년에 축조하여 3년 후에 준공하였다가 세종 29년인 1447년에 개축, 성종 10년 1479년에 증축되었으며 1961-63년에 해체 수리된 6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 국보 1호인 문화재이다. 남대문의 정식명칭은 숭례문으로 그 현판은 세종대왕의 형인 양령대군의 친필로 다행히 이번 화마 속에서 보전되었다.
숭례문은 문자 그대로 ‘예(禮)를 높이고 존중하는 문’이라는 뜻이리라. ‘예’란 인간이 마땅히 지켜야 할 규칙과 도리이다. ‘예’는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고 우리의 공동체를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도덕률이다. 반대로 ‘예’가 없는 세상은 이성과 양식이 존립할 수 없는 사회, 즉 야만 또는 동물의 왕국과 같은 것이다. 규범과 수치심이 없고 질서가 서지 않는 난장판 바로 그런 세상이다.
현판은 단순히 대문의 명칭이 아니라 이곳에 살거나 드나드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이상과 꿈을 표방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가 총체적으로 실종된 한국사회에서 서울시민 대다수는 숭례문을 출입할 수 없는 무자격 시민이나 다름없다.
오늘날 한국 사람은 아무리 잘 보려해도 옛날의 그 선량하고 순박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주변은 전래의 언행과 모습과는 동떨어진 또 다른 유형의 한국 사람들로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어찌된 영문인지 물질생활이 풍족해 질수록 정신세계는 유치해지고 배운 사람이 늘어날수록 인성은 메말라 갔으며 종교인이 많아질수록 사회는 더욱 혼탁해졌다.
위, 아래 가리지 않고 허위와 막말이 성행하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부정, 비리, 사기, 음란행위가 범람되더니 요즈음은 유괴와 살인 같은 말세적인 범죄가 날로 늘어나는 추세이다. 한국인으로 보기 어려운 그런 사람들이 국보가 타버렸다고 새삼스럽게 야단법석을 떠는 꼴이란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일인가.
문화재는 역사의 소산물이다. 역사의 본질은 가시적인 것이 아니라 그 유형물을 낳은 사상과 문화이다. 원래의 정신과 전통이 담기지 않은 건축이라면 복원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의 역사가 될 수 없고 자랑이라 할 수 없는 한갓 볼거리에 불과할 뿐이다.
언젠가 숭례문은 다시 세워질 것이다. 그때 어떤 현판을 걸어야 할지는 순전히 서울시민들이 담당해야할 몫이다. 그 문에 굳이 현재와 똑같은 현판을 달려면 먼저 현판의 뜻에 부합되도록 사람들의 의식이 개조되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너무 오랫동안 또 깊이 오염되어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기에 어려움이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한국인 특유의 추진력을 발휘한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 환골탈태의 범시민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숭례문은 아무리 웅장하고 멋있게 신축하여도 또 다시 허구적인 건축물, 역사성을 상실한 가짜 문화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온 시민들이 진정으로 숭례문을 서울의 자랑스런 보물로 세우려면 서둘러 건물 짓기에 앞서 확고한 숭례 사상과 올바른 가치관을 먼저 갖도록 해야 할 것이다.
조만연
수필가·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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