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설날이 다가오면 한 달 전부터 산자를 만드는 큰 행사를 치렀습니다. 찹쌀가루를 빻아 반죽을 만들어 동그란 모양을 만들고, 뜨뜻한 방바닥에 여러 날 뒤집으며 상전 대하듯 모신 후에, 붓으로 잘 털어 꽝꽝 말린 다음 기름에 튀기고 엿을 발라 볍씨를 불에 익혀 함박꽃 같은 쌀튀밥을 만들어 옷을 입혀 큰 상자에 가지런히 담아 세배 손님이 올 때마다 한 접시씩 대접할 때면 함께 참여한 온 가족들이 뿌듯한 기분을 누렸습니다. 참으로 손이 많이 가는 정성스런 작품으로 느껴 한 입 베어 물 때의 그 감격이 지금도 혀끝에 남아 있습니다. 그 추억이 그리워 마켓에 나오는 비슷한 것을 사 먹어 보며 실망하면서도 그 맛이 다른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그동안 너무 맛이 있는 새 음식들에 길들여졌거니 했습니다.
요즈음은 장시간의 노력과 수고의 대가로 얻는 잔잔하고 뿌듯한 기쁨보다는, 신세대의 중독성 있는 ‘즉흥적 쾌락’ 추세에, 교훈이나 영감을 주는 것보다 새로운 뉴스와 짜릿한 쾌감을 추구하는 세태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하루 이틀 걸려 힘들게 만드는 떡이 아니라 간편하게 언제든지 골라 먹을 수 있고 김치, 온갖 일품요리, 과일, 채소 등 계절에 상관없이 즉각 대령할 수 있는 편리한 시대를 살면서 시간도 절약되고 더 많은 일을 하기도 합니다.
첨단 과학의 혜택으로 학교에서도 일이 간편해졌습니다. 출결석, 성적 처리를 인터넷으로 클릭만 하면 되고 학생, 부모와 언제든 정보를 나누고 학생들도 재래의 종이를 사용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인터넷 Youtube에 올린 내용을 교실의 큰 스크린 TV로 발표를 합니다. 책을 읽고 정보를 얻는 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 각종 시청각 자료를 간편하게 학습에 도입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학생들이 각자의 아이팟이나 셀폰, 컴퓨터 앞에서 밤새도록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며 즉시 원하는 정보를 주고받습니다. 칠판에 적은 내용도 귀찮아 휴대 전화기로 사진을 찍어갑니다.
그러다보니 기다리며 정성을 들이고 돌보며 시간을 투자하는 것에 점점 서투르게 됩니다. 은근과 끈기, 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던 옛 세대와, 간편하고 즉각적인 것을 추구하며 인내심 없는 신세대가 부딪히게 됩니다. 학생들의 독서율이 낮아지고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며 배우기보다는 작은 공간에 혼자 앉아 세계와 교류하며 신속하고 편리한 정보 클릭에 중독된 줄도 모르고 인스턴트식품을 선호하며 몸을 더 무겁게 만드는 시절입니다.
기본이 튼튼하여 세속에 쉽게 물들지 않는, 평생 가치관이 됩니다. 고생을 대물리지 않겠다며 부모 돕는 시간에 공부하라는 발상으로 집안일을 전혀 시키지 않는 부모는 아이를 게으르고 자신만 아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고집 센 아이로 만듭니다. 집안일도 거들게 하고 부모의 어린 시절 얘기도 나누고, 날마다 삶의 현장에서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보통 사람 성공의 법칙을 보여주어야 하겠습니다. 아이는 부모가 고생하는 모습을 직접 보며 정신적 갈등이나 육체적 고통을 가족의 일원으로 나누어 짊어질 때, 배려하고 자발적이며 긍정적인 관계가 깊어지고 성숙하여, 훨씬 건강한 미래를 열어 갑니다.
어려서부터 적당한 노동과 절제, 건전한 가치관 형성이 부모의 의도적인 노력 속에 이뤄지는 가정이라면 오늘날 중독되기 쉬운 즉흥적인 쾌락에 우리의 아이들을 송두리째 맡기지는 않게 되리라 봅니다.
비행기는 첫 시동에서 높이 오르기까지 절반가량의 연료를 소모하고 일단 높이 오른 후엔 소모가 적다고 합니다. 효과적인 투자가들이 사업에 대한 구상과 실습, 조언과 각종 아이디어 실천에 혼신의 정열을 쏟듯이 100년 앞을 바라며 상급으로 주어진 자녀들을 대하는 우리 태도를 점검해 봅니다.
박복희
<세리토스고 한국어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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