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우 (1959~) ‘비명’ 전문
냄새였다 자갈치가 끝나는 모퉁이
선창에 도착하자마자
거미손으로 뭍을 꾸려가야 하는 파도는
쩔대로 쩐 어둑한 계단으로 삐걱거렸다
그물필마다 더께진 그 쩐내는
신발 밑창에 쩍쩍 달라붙어
중력보다 더 큰 실존을 정확히 찍어낸다
빈 생선짝
더 비린
외마디 냄새,
칠순 넘도록 입었던 아버지 옷이었다
냄새를 지나 냄새에 닿는 내 냄새는
물때썰때 없이 물컹한 바다를 또 껴입는데
먼바다들이 끌려와
선원모집, 선원모집이란 붉은 글씨들 속에서 늙고 있었다
삐뚤이로 주저앉은 〈초원다방〉 간판 사이
막 켜진 전등 하나가 마지막 창문처럼 열리고
한 번도 일인칭으로 살지 못했던
눈빛들 비늘처럼 여기저기 박힌
캄캄절벽
빈 밧줄에 걸리는
비명,
소리가 아니라 냄새였다
추억은 모습으로 저장되지만 기억은 냄새로 저장된다. 서러운 사연일수록 공감각적이다. 더구나 칠십 평생을 아버지가 걸쳤던 갯냄새라니. 화자는 순전히 비린 냄새 하나에 끌려서 아버지에게로 가고 있다. <냄새를 지나 냄새에 닿는 내 냄새>, 시인들한테서 풍기는 비린내의 정체를 알 것도 같다. 일인칭이 아니긴 선원이나 시인이나 마찬가지가 아니겠냐고. 삶의 냄새가 지독하기는 둘 다 마찬가지 아니겠냐고.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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