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장모님의 금혼식 잔치가 있어 오랜만에 한국을 방문해 그리던 친지와 친구들을 만나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요즘 어르신네들이 오래 산다고는 하지만 이혼이 많은 시대에 장인, 장모님의 금혼식은 보기에 아름다웠고 홀로 되신 친구분들은 무척 부러워 하셨다. 부부가 사랑하기에도 모자라는 시간에 싸우면서 보냈던 지난 세월들을 아쉬워하시던 두 분의 이야기는 마음에 여운을 남긴다.
바쁜 일정이었지만 부산 해운대, 태종대, 동백섬을 거쳐 경주 문화 탐방을 하며 옛날 수학여행의 추억과 연애 시절을 더듬기도 했다. 한국은 초봄이라 화려한 여인의 옷같이 만발한 벚꽃, 청순한 하얀 목련, 심장 색깔 같은 빨간 동백꽃은 사랑을 속삭이듯 아름다운 손짓으로 나를 반겨주었다. 들녘에 핀 진홍빛 진달래, 샛노란 개나리는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다.
고국방문 기간이 마침 총선 기간이어서 가는 곳 마다 선거 유세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는데 유세도중 부르는 노래의 가사가 귀에 와 닿았다.
“잘 사는 날이 올 거야” 라는 가사였다. 당사자를 뽑아주면 잘사는 날이 온다는 그 가사는 30-40년 전에 내가 한국에 살 때 늘 듣던 바로 그 내용이었다. 새마을 운동 깃발 아래 “”우리도 이제 잘 살아보세” 라고 울리던 확성기 소리. 그 노력으로 지금 우리는 감사하게도 경제적 부흥을 이루며 옛날의 배고픔과 추위에서 상당히 벗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서울에 올라온 나의 머릿속은 “지금부터30-40년 후에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복잡해 졌다. 무거운 짐으로 다가 오는 도시 집중화 문제, 공해, 교통 혼잡, 교육, 빈부의 갈등 문제 등. 그러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온전한 가정의 상실인 듯 했다. 많은 친구들의 가정은 깨어져 있었으며 가정이 있어도 부부 사이에 대화가 단절된 내외들이 많았다.
부부들이 사회 활동과 친구들과의 만남을 각각 따로 하고 있었으며 부부간에 같이 모이는 모임이 드물었다. 시간에 쫓기는 자녀들과 부모 사이의 대화가 줄면서 뿔뿔이 흩어지는 모래알 같아 진 가정들. 잘 살아보기 위해 부모, 자녀들 모두 경쟁적으로 열심히 뛰지만 무엇을 위한 달음박질이던가.
“잘 살아보세” 라는 일념으로 달려 왔지만 우리가 정말 어떻게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때라고 생각해 본다. 고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내 자신을 돌아본다. 잘 살아보기 위해 미국에 왔다면서 어떻게 생활해 왔는가 묻게 된다. 물질적인 풍요를 위해 더 중요한 가치 있는 것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가정을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왜 아내에게 더 따뜻한 말로 다가가지 못했는지, 아이들에게 “너는 누가 뭐래도 나에게는 참 사랑스럽고 귀한 존재야!” 라는 말을 왜 더 자주 해주지 못했는지 등등.
자연을 사랑하고 지구를 보존하기 위해 작은 것을 하며 일을 줄여 수입은 줄더라도 규모 있는 생활을 하고 가족들과 더 따뜻한 시간과 대화를 나누고 하늘의 뜻을 더 깨닫고 이웃 사랑하기를 내 몸과 같이 하지 못한 지난 세월이 못내 아쉬움의 앙금이 돼 가슴에 가라앉는다. 매서운 추위를 끝내 견디어 내어 각각의 색으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며 더 따뜻하고 풍성한 봄을 기다린다.
김홍식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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