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 한의사로서 공부를 보다 폭 넓게 하기 위해서 정형외과학 세미나에 참석하고 있다. 세미나는 유명한 시더스 사이나이 병원에서 개최되고 있는데 이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파킹 장 #2에 주차를 해야 한다.
이 주차장에는 흰 대리석으로 만든 남자의 동상이 있다. 휘날리는 긴 머리와 수염, 고전, 희랍식의 옷을 걸친 잘 다듬어진 근육의 남자가 앉은 자세로 오른손에 돌판을 들고 있다. 아무런 푯말이 없지만 모세의 동상이라고 같은 세미나에 참석하는 유대계 친구가 알려 줬다. 사이나이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시내산을 뜻한다. 유대인들은 자선사업에 인색하지 않고 서로 똘똘 뭉치는 공동체 인식을 보이며 사업이나 여러 일들을 할 때 서로 도와서 함께 노력하는 것을 많이 듣고 보아왔다. 성실, 근면, 봉사 같은 가치관이 그들 가정교육의 기본이라고 생각이 된다.
이 모세의 동상을 보면서 한인타운 놀만디와 올림픽에 있는 다울정이 떠올랐다. 차를 타고 휙 지나가면서는 도저히 다울정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다울정 앞에 주차를 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철책으로 울타리가 만들어져 있어서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시커먼 대리석에 새겨져 있는 글과 여러 이름들을 눈여겨봤다. “Let’s All Live in Harmony라는 말이 조각되어 있는데 더 이상 설명은 볼 수가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다울은 “다 같이 함께 하는 우리”라는 순수 한글이라고 한다.
모세의 동상과 다울정. 이 둘은 어쩌면 미국 내 유대인과 한인 이민사회를 상징하는 것 같았다. 모세의 동상은 아무런 푯말도 없지만 언제나, 누구든지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러나 다울정은 대체로 잠겨 있고 밖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수많은 단체와 개인의 이름이 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다는 주류사회 일원으로서의 자신감과 여유, 그리고 오픈되어 있는 상황을 보여주고 있지만, 한인 이민사회는 아직 불안하고 고립되어 있는, 밖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우리들만의 세계라는 면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그 병을 알면 처방도 나와야 한다. 삶에는 무수한 미지수와 우연, 뜻밖에 일어나는 일들이 많다.
원래 문학교수를 하던 내가 한의사가 된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 오히려 나에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나의 이웃에 초점을 맞추는 여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꼭 물질적인 여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친절한 말 한마디, 남을 배려하려는 작은 손길, 내 것이 아니라 우리 것,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이런 생각이 한인 이민사회를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울의 뜻처럼 다 같이 함께 할 수 있으면 나만을 주장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눈으로는 보이지만 가까이 갈 수 없는 고립된 공간이 아니라 마음과 생각의 울타리가 없어진, 서로 붙잡고 울 수도 있고 웃을 수도 있는 공간이 형성된다면 다 같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의 삶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동체를 상징하는 우리 다울정의 철책이 없어지는 날은 언제일까.
서예지
문학박사· 한의사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