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중에서 으뜸은 단연 장미꽃이다. 그 아름다움과 향기는 다른 모든 꽃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장미는 흔히 여성에 비유되기도 한다. 여자의 아름다움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바로 가시가 있기 때문이다. 장미의 가시에는 페르시아의 전설이 있다. 옛날 연꽃이 화왕인 시절 연꽃이 밤에 잠만 자고 다른 꽃들을 지켜 주지 않자 꽃들이 신에게 호소하였다. 그래서 신은 흰 장미를 만들어 가시를 무기로 주었다.
그런데 흰 장미의 아름다음에 끌린 나이팅게일 새가 날아와 홀딱 반해 안으려다가 그 가시에 찔려 죽으면서 피가 흰 장미를 적셔 붉은 장미가 되었다 한다. 흰 장미는 존경과 순결을 의미하며 빨간 장미는 욕망과 열정, 아름다음의 절정으로 여긴다하니 그 의미가 꽤나 진지하다.
5월의 문턱에서 마음을 두지 못하고 고국에 풋풋한 푸름을 되돌아보는 것은 고달픈 이민생활의 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만큼 냉정한 것이 또 있을까. 한번 지나고 나면 그 뿐, 두 번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 삶, 그래서인지 녹음이 짙어올수록 영원이 머물지 않음을 먼저 생각하게 한다.
미국에 오기 전 캠퍼스 뒷산에 올라 내려다 본 5월의 전경을 잊을 수 없다. 온통 장미로 가득한 꽃 잔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멀리서 귀청을 울린다. 아름다운 정경에 부럽고 질투가 나는 충동을 느끼며 점점 내 모습이 작아져만 간다. 알 수 없는 목메임이 가슴을 타고 흐른다. 그제야 내 가슴속에 꽉 채워진 것이 무엇인가 알 듯만 하였다. 나의 시간과 세월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고 지울 수도 없다. 미카엘 엔데의 말처럼 나의 과거는 어디로 가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서정의 그리움 속에서 순화되어 목리처럼 내 마음의 심연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해마다 장미는 새로운 모습으로 반긴다. 수없이 반복되는 장미나무와 장미꽃의 해후, 피었다 지는 장미꽃은 장미나무를 제 것이라 주장하지 않는다. 가을의 끝을 5월에 생각한다는 어느 시인이 그 푸르름의 찬란함을 낙엽으로 떠올렸던 것은 어차피 찾아오는 귀일처가 그 곳임을 미리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부터인가 5월14일을 ‘로즈데이’로 정해 연인들끼리 서로 장미꽃을 주고받는다. 장미가 계절의 여왕인 5월에 가장 아름답게 피고 꽃의 여왕이기에 이 달에 ‘로즈데이’가 정해진 것은 당연하다. 3월의 화이트데이를 놓친 연인들에게는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장미의 꽃말은 사랑이다. 붉은 장미와 함께 달콤하고 정열적인 사랑을 고백할 절호의 기회이지 싶다.
미국에 정착해 얼마 되지 않아 장미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집 앞에 장미 정원을 만들었다. 장미를 고르면서 하나하나 색의 의미를 생각했다. 핑크색을 고르고서는 행복한 사랑을, 노란 장미를 고를 때는 반대의 결합을 생각했다. 그리고 하얀 봉우리를 보면서는 당신에 어울리는 사람을 떠 올렸고 마지막 빨간 장미 44송이에는 “사랑해요, 또 사랑해요”의 의미를 담았다. 장미를 심으면서 내내 행복했다. 해가 서산에 기울고 장밋빛 노을이 선한 핏빛이다. 하늘도 사랑을 하면 타는 마음속을 숨길 수 없나보다.
안주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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