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가 돌무더기에 흰 끄나풀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뱀 허물이다 머리를 땅에 박고, 이리로 저리로 요렇게 조렇게 들어가셨소 내가 그 증거요! 온 허물로 가리킨다 이건 단순한 허물이 아니라 뱀에 의한, 뱀이 썼던 허물이 분명하다 한마디로, 이 안에 뱀이 있었다는 것 저 안 어디쯤 진짜가 있다는 것 울고불고 마지막까지 뒤집어쓰고 살아온 시를 놓아주고 생것이 사라져간 쪽을 향해 입 꽉 다물었다
마지막까지 울고불고 놓아주지 않던, 시를 놔두고 시인은 어디로 홀연히 사라진 것인가. 시가 껍질인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마지막까지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한 꺼풀 시집을 벗어놓고 사라진 뱀은 어디로 가서 뱀으로만 살고 있는지… 시인이 아닌 뱀으로만… 죽음 직전까지도 시에 매달리는 시인의 정신이 징그럽도록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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