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호 ‘장마에 갇히다’ 일부
창가에 서서 비의 창살을 두 손으로 잡고 흔든다
방은 감방이었고 나는 수감 중이다
언제부터 빗소리에 취조 당하고 있었던가
나도 모르게 기밀들을 발설하지는 않았는지
비는 더 알아야 할 것이 있다는 듯 그치지 않고
더 젖을 것도 없는 나는 창가에 서서 불안하다
빗소리에 젖지 않는 것이 이 세상에는 있는가
호출신호처럼 천둥이 울리면 각오할 수밖에 없다
남은 것은 전기의자뿐이라는 듯
하늘은 연신 전원을 올리고 있다
탈출을 감행했던 사람들은 모두 독방수감중이다
우산 속에 갇힌 사람의 뒷모습과
이역의 대문 앞에서나 처마 밑에서
홀로 발 동동 구르는 사람들은, 그래서 쓸쓸하다
비의 제국주의도 이쯤 되면 폭동이 있을 법한데
잠잠하다 비의 강점기, 비의 탄압은 완벽하기에
언제부터인가 세상의 창가에 불빛이 아른거린다
불빛은 사람들의 염원을 담고 몰래 타오르고 있었다
직선으로 내리 꽂히는 빗줄기가 창살의 이미지를 갖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비가 오면 나들이가 곤란하니 감옥이라는 말은 맞다. 궂은날은 이런저런 생각도 많아지니, 퍼붓는 물고문에 술술 추억과 그리움을 토설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맞다. 여기다 불꽃 튀기는 전기고문까지 더하면 말해서 무엇 하랴. 탈출을 한다고 해도 이내 잡혀서 우산이라는 독방에 갇히고 마는, 어디에 있어도 갇힐 수밖에 없는, 장마철은 비의 강점기인 것이 확실하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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