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우연히 미국인 합창 지휘자와 나란히 서게 되었다.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대화하는 도중에 그 미국인 지휘자는 대뜸 나에게 당황스런 질문을 던졌다. “왜 한국인들은 합창할 때 일반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소리만을 내느냐”는 것이었다. 질문 치고는 좀 거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대로 지나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나는 “당신도 알다시피 합창 음악은 그 사회의 문화적 배경과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겠는가”라고 대답했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침 우리 합창단의 차례가 와서 그 자리를 떠났다. 몇 년 전 한인교회와 미국교회가 함께 모여 ‘성가 합창제’를 가졌을 때 마지막 무대 연습을 하는 중에 있었던 일이다.
문화와 합창은 어떤 상호 관계가 있는가는 그저 간단하게 설명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합창 그 자체가 문화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합창이 총체적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러시아 사람들과 미국 사람들의 합창은 무엇인지 다르다. 독일인과 이탈리아인들의 합창도 다르다.
미국인 지휘자의 지적은 꽤 예리하고 이유 있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하기 어려운 얘기를 나에게 기탄없이 해준 그에게 감사한다.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당했다. 중국을 대국이라고 일컬었고 대체적으로 큰 것을 선호하는 컴플렉스에 사로잡혀 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국호도 대한민국, 제일 큰 벼슬자리는 대통령, 가장 높은 학문의 전당을 대학이라고 하고 심지어는 연주회도 ‘메시아 대 연주회’라고 하는 등 수 없이 많은 예가 있다.
한국인들이 합창을 할 때 왜 소리를 질러대느냐 라는 말과 무겁고 어두운 소리를 낸다는 말은 발성 기교상 같은 말이다. 즉 두성과 흉성을 잘 구분할 줄 알아야 된다는 지적이다. 음악의 기본적인 원리는 통일성과 다양성이다. 수만 많으면 좋은 합창단, 소리만 크면 잘 하는 합창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뉴욕 관현악단이 지난 2월26일 평양에서 연주를 했다. 앙코르로 우리 민요 아리랑을 연주했다. 물론 훌륭한 연주였다. 그리고 감격적인 연주였다. 이민족의 민요지만 잘 훈련된 관현악단답게 그 속에 담겨 있는 심미적 감수성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청중들도 그에 못지않게 좋았다. 교향곡의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예의도 잘 지켜 주었다 .
미국인 합창 지휘자가 지적했듯이 천편일률적으로 ‘큰 소리’ ‘무거운 소리’ ‘어두운 소리’를 추구함으로 잘 융합되지 않은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통일성과 다양성을 갖출 때 비로소 수준 높은 예술적 합창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또 아무리 좋은 지휘자와 합창단이 있어도 좋은 청중이 없으면 좋은 합창은 불가능하다. 합창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 되게 한다. 또 좋은 합창 속에는 통일성과 다양성이라는 바람직한 가치가 잘 녹아나 있다. 합창 지휘를 할 때마다 이런 교훈을 되새겨 보게 된다.
박환철
음대교수·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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