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파람 리싸이틀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모처럼 시간도 나고 몸도 찌뿌듯하여 수영이나 할 셈으로 Gym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막 수영장으로 들어서다가 수영장에 울려 퍼지고 있는 휘파람 소리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다. 수영장 모퉁이에 있는 자쿠지쪽을 보니 백발의 노인이 홀로 앉아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텅 비어 있는 이 넓고 높은 공간에서 공명을 이루어 낸 더없이 아름답고 감미로운 멜로디였다.
절제된 슬픔이 베어있는 듯한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는 곡 그 자체도 아름답지만 휘파람을 부는 솜씨 또한 예사롭지가 않았다. 타고났는지 아니면 훈련에 의해 가꾸어진 소리인지 참으로 탄력 있는 휘파람 소리에다가 감정처리까지 잘 된, 그야말로 휘파람 리싸이틀 에라도 온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Ron William이라는 분이었다. 휘파람 불기를 즐기던 농부였던 아버지에게서 3살 때 배웠다는 휘파람을 그 자신도 평생 즐겨 불며 산다고 했다. 그가 어렸던 시절 옥수수 밭이나 목화밭을 너머 아련히 들려오곤 했던 그의 아버지의 휘파람 소리를 그는 지금도 기억 속에서 들을 수 있노라 고 했다. 부전자전이라 더니 휘파람을 부는 뛰어난 솜씨를 아버지로부터 이어 받았는가 보다. 지금 부른 곡이 무슨 곡이냐고 묻자 간단히 말한다.
‘Peace Song’.
알링턴 국립묘지. 그가 군 복무를 한 곳이 바로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주검으로 돌아와 묻히는 장소인 알링턴 이었단다. 어디에 있는 지도 몰랐던 월남이라는 나라를 비롯하여 여러 곳으로부터 말없이 실려온 전우의 시신을 묻어 주며 그들이 불러 주었다는 노래가 바로 이 곡이라 했다. 비록 얼굴은 모르지만 자신과 같은 나이의 전우들을 묻으며 이 노래를 불렀던 이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한 때 밥 딜런이 부르기도 했었다는 이 ‘Peace Song’을 좋아한다는 백발의 노인. 휘파람으로 그가 들려준 이 노래가 오늘 나를 잡아끌어 당긴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잔잔한 슬픔이 휘파람 소리로 공중에 퍼져나갈 때 나에게 느껴졌던 그 아픔이 다시금 가슴속으로 와 박히는 것만 같다. 때론 슬픔도 약이 되는 법. 그래서 나는 가끔 슬픈 음악을 듣고싶어 한다. 유독, 이 ‘Peace Song’을 좋아한다며 휘파람으로 불고 있던 이 순백의 노인도 아마 나와 같은 느낌을 가졌던 모양이다. 시원스런 미소를 나에게 지어 보이는데 굵게 주름진 그의 웃는 얼굴 위로, 슬픔을 누르느라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노래를 부르는 한 선량한 젊은이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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