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모 호수 전경
이번에는 이탈리아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좀 해보고 싶었습니다. 이왕이면 경치가 좋은 지방에 가서 구경도 하고 일을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밀라노에서 별로 멀지 않은 코모 호수는 경치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라 우선 그곳에 마땅한 레스토랑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베니스 북쪽에 있는 푸리울리 지방에 콜라비니 라는 아는 포도 농장이 있어 거기에 문의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거기서 그렇게 멀지 않으니 자기네 술을 대는 곳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드디어 콜라비니 포도 농장의 소개로 코모 호숫가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 가서 몇 주 일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을의 큰 광장에 있고 호수를 바로 앞에 둔 평판이 좋은 곳으로 결정이 되었습니다. 일하는 대가를 요구하면 주어진 일을 하느라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볼 새가 없기 때문에 서로 돈 문제는 따지지 말자고 부탁했습니다.코모 호수로 간다고 하였더니 항상 특유한 곳이나 재미난 곳을 잘 쑤셔 내는 남편이 일 시작 하는 게 마침 부활절 때니 딸의 부활절 휴가를 하루 이틀만 더 추가하기로 하여 함께 가족 휴가를 즐기고 그 다음 저는 거기서 남아 계속 있으면서 일을 하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빌라 데스테(Villa d’Este) 라는 유명한 호텔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기도 이름만 들어봤다며 꼭 가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유명하고 비싸면 그런 돈 낼 수 있는 노인만 오는 것 아니야?” 별로 시원치 않을 것 같아 제가 물어본 말입니다. 플로리다의 마이애미를 방문 했을 때 환갑 이전의 사람들은 눈 씻고 볼래야 볼 수도 없어 (지금은 다릅니다) 제가 한 말 이었습니다.“나한테 항상 돈 없다면서?”
“음....그건 내가... 뭐, 특별히 마련하지”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하며 대답했습니다.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게 빌라 데스테에 대해 물어 보아도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시큰둥한 저의 태도로 결국 그 계획은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계획된 날짜에 밀라노 공항에 내려 다시 기차를 타고 코모에 도착 했습니다. 제가 일하기로 한 그 레스토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 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이름이 피렌체(플로렌스를 일컫는 말)였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합니다. 대성당의 종소리가 들리고 창으로는 뒷골목의 오밀조밀한 지붕이 내려다 보였습니다. 돌을 모아 만든 옛날 길이라서 그런지 하이힐을 신은 여자 들이 걸어가면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습니다. 분위기가 다른 것이니 그것도 저는 하나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깨끗한 호텔 방이 마음에 들었습니다.중간 크기의 그 레스토랑에는 주방장과 조수들이 다섯인가 여섯 명 정도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야채를 다듬다가도 누가 색다른 요리 준비를 하면 하던 일을 놓고 가서 구경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그 마음 좋고 순박한 주방장이, “킴(제 이름), 비에니 뀌(이리와 봐)” 하고 저를 불러 자기가 하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영자라는 이름을 발음하는 것은 고사하고, “영즈...?” 혹은 “영, 뭐라구?” 라고 말하거나 기억 하지도 못해서 성을 불러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동양 사람을 대한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니 그런 이름이 오죽이나 생소 하겠어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얄팍하게 저민 송아지 고기(스칼로피니라고 부릅니다)를 많이 만드는데요, 철판에다가 밀가루를 쓱쓱 뿌리고 그 위에 송아지 고기를 겹치지 않게 펴서 담더라구요. 그리고 그 위에 다시 밀가루를 뿌렸습니다. “아! 밀가루를 그릇에 담고 고기를 한 점씩 담그는(꼼지락 거리는 제 스타일) 것이 아니구나.” 그렇게 하니 정말 얼마나 일이 빠른지! 그래서 많은 양을 처리 하는 법은 실제로 그렇게 레스토랑에서 일을 해야 많이 보게 되더군요.
오리고기의 맛을 거기서 처음 보았습니다. 살이 붉은 빛이 나고 맛이 훨씬 더 있었습니다. 옛날 알던 중국 여자 친구가 중국에서 오리고기와 닭고기의 차이는 양반과 상놈의 차이와 같다고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큼직한 통 생선의 위와 아래를 완전히 소금으로 덮은 후 오븐에 넣어 굽는 것을 거기서 처음 보았습니다. 후식으로 만드는 얄삭한 퍼프페이스트리(puff pastry-가볍게 여러 겹이 부풀어 오르는 과자)에 사과를 저며 피고는, 그 위에 설탕만 뿌린 후에 오븐에 넣어 구웠습니다. 그것을 보니, 프랑스
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쪽 지방이라 프랑스의 요리의 영향이 많다고 생각 했습니다. 파스타의 종류도 새로운 것이 많았습니다. 감자와 밀가루를 섞어서 동그스름한 모양을 만드는 ‘뇨끼’도 거기서 생전 처음 구경하고 맛을 보았습니다. 밀가루로만 만든 것보다 감자가 들었으니 좀 더 부드럽더군요.
그 레스토랑에서 매일 새로운 음식을 보는 것과 아름다운 코모 호수의 경치에 매혹되어 신이 나게 지냈습니다. 쉬는 시간엔 맛있는 푸로시우또 (훈제된 햄)를 파는 상점이나 야채 파는 상점을 기웃거리거나 젤라또(아이스크림)를 핥으며 이 골목 저 골목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며칠 후에 우리 식구가 갈 뻔했던 “빌라 데스테” 구경을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점심 예약을 하고 갔습니다. 호수 바로 앞에 있는 그 경치가 벌써 얼마나 좋은지 말할 수 없었습니다. 호텔의 로비로 들어섰습니다. 크고 둥근 기둥이 있는 로비는 웅장 하면서도 어머! 정말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야! 여기가 옛날 귀족의 대 저택이었다니...”
테라스에 있는 식당으로 가니 거기엔 젊은 사람들, 노인, 어린이들까지 모두 섞여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노인들만 있으리라고 생각 했던 그 호텔의 분위기가 이렇게 좋다니! “이거 내가 정말 너무 몰랐구나.” 저는 혼자 중얼 거렸습니다. “아이구, 억울해.” 기회 놓친 것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이태리 사람들은 원하면 전채요리를 먼저 시키고 그 다음 파스타, 그 리고 메인코스로 생선이나 고기를 시키지요. 일반 가정에서는 그냥 파스타만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저는 점심이라 메인코스만 시키고 더 먹을 수 있으면 후식을 시키기로 하였습니다. 따뜻하게 데운 접시에 담겨 나온 음식은 보기에도 아름다웠습니다. 지진 생선에 모양이 예쁜 야채가 곁들여져 있었고 크림이 들은 것 같지 않은 소스가 흘려져 있었습니다. 뭐 꼭 이탈리아 음식이라기보다는 세계적인 음식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습니다. 말랑거리는 부드러운 살점을 감싸고 도는 소스 맛을 느끼면서 어느 나라에 내어 놓아도 손색이 없을 일류 음식이라고 생각 했지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이제 호텔을 둘러보기로 하였습니다. 뒷뜰 언덕진 곳에 층층대 식으로 지어 물이 흘러내리게 한 것이며 그 정원의 구석구석이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굴곡이 많은 산을 건너다 볼 수 있도록 호수 바로 앞에 지은 수영장. 저는 정원의 나무 사이로 호수를 건너다보며 넋을 잃고 서 있었습니다. “야!, 참 멋지게도 살았구나” 아! 저 멀리 호수 건너 보이는 또 다른 빌라의 풍경은 이태리 옛날 명화에 보는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과 똑 같았습니다. “이런데서 그런 그림들이 나왔구
나” 하고 생각 했습니다. 바로 그 우피찌 박물관에서 본 한 폭의 그림, 바로 그 것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저는 이 세상의 수많은 곳을 쑤시고 다녔지만 코모 호수는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또 있을까!” 하고 생각 되는 곳입니다.
지금도 때로 그 낭만적인 골목길과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지나가는 여자면 염치 불구하고 쳐다보는 짓궂은 남자들의 시선, 율동적인 그들의 말과 함께 손짓과 몸집 까지 동원하는 사람들. 참 그 낙천적인 태도에 호감이 가더군요. 언제 다시 한번 꼬옥 코모에 가 보아야지 하고 저는 아직도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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