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생일 선물로 준 파리의 ‘리츠 에스코피에(Ritz-Escoffier)’ 요리 학원에서 동료들과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다시 몇 해 후 생일 선물로 남편이 저에게 파리에 있는 리츠 에스코피에(Ritz-Escoffier) 요리 학원에 한동안 가서 공부할 수 있는 선물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배웠다고 하더라도 가끔 새로운 것을 보고 배워 발전을 시켜야지요. 코르돈 블루(Cordon Bleu)는 주로 젊은 아이들이 많이 가는 곳이고 고급 호텔인 리츠(Ritz)에 있는 이 학원에는 좀더 비싸서 그런지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이 왔습니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정말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한 달인가를 호텔에 있을 수도 없고 아파트를 빌릴 수도 없을 것 같아서 숙소는 어느 기관(Home-Stays in France)을 통하여 학생들에게 방을 빌려 주는 하숙집을 찾았습니다. 이왕이면 한 두 마디 프랑스 말도 늘이고 싶었습니다. 개선문(피리의 서쪽에 위치) 근처 빅토르유고(프랑스 작가) 광장에서 멀지 않은 데에 있는 옛날엔 상당한 부자였던 것이 분명한 집이 걸렸습니다. 커다란 아파트엔 방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저는 그 집 부엌 옆에 있는 방을 하나 구하게 되었습니다. 있을 때에 하녀의 방이었겠지요.
짙은 녹색으로 벽을 칠한 그 방의 벽에는 붉은 색이 나는 아마 콘테라고 부르는 분필 같이 생긴 것으로 그린, 아주 잘 그린 어린 아이의 초상화가 하나 걸려 있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 미술 대학에 갈까 하고 많이 써본 재료였습니다.
저는 그 그림을 보면서 딸의 초상화를 부탁해 볼 생각도 했습니다. 그 집 식구들은 아주 교양이 있는 사람들이었고 지금은 없어서 방을 빌려 주고 있겠지만 가구도 무척 고급이더라구요. 거실에는 조상에게 물려받은 옛날 그림이 걸려 있었는데요 저는 그 그림을 보고 박물관에 걸릴 만한 그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집의 거실에 앉아서 두 부부와 그림 얘기, 요리 얘기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부인이 넘겨주는 명함을 보니 거기에는 귀족의 직위가 적혀 있었습니다. 아 그래서 이런 그림과 가구가 있는 집에서 살고 있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리츠 에스코피에 요리 학원에서는 뉴욕의 요리 학원 보다는 차원이 높은 글로리어스푸드 수준의 음식을 다루었습니다. 닭 국물은 낼 때 닭을 철판에 지져서 넣는 것을 거기서 보았지요. 국물이 훨씬 구수했습니다. 소스에 크림을 추가하는 방법(넣고 끌이지 않습니다), 부야베즈(해물 찌개) 만드는 법, 섬세한 과자 만드는 것까지 자신을 갖고 내보이는 섬세한 프랑스 요리의 근본을 터득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그 프라이드가 상당하더군요. 노르스름한 초콜릿 판에다 짙은 갈색 초콜릿으로 나무의 나태가 나타나게 만들어 그것을 케익의 가장자리를 두르는 고급반 학생들의 작품을 보았습니다. 너무 감탄을 하여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저는 하루라도 빨리
진보하고 싶은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부풀러 올랐습니다.
마들렌이라는 과자 먹어 보셨어요? 한쪽이 마치 골이 있는 조개껍질처럼 생긴 그 과자는 버터가 누렇게 될 때까지 끓여 아주 고소하고 맛이 있는 냄새가 나게 하여 만드는 것입니다. 호두 색이 나는 버터라고 하여 프랑스 사람들은 ‘버르 노아젯’이라고 부릅니다. 아, 그래서 이 과자는 그렇게 맛이 있구나 하고 생각 했습니다. 바닐라 향이 스쳐 가는 보드랍고 고소한 그 과자를 깨물 때에는 단여 이 세상에서 제일 맛이 있는 과자이지요. 뻐띳푸르(petits-fours)라는 작고 섬세한 과자 만드는 것을 배운 날은 그것을 상자에 담아 하숙집 냉장고에 넣고 ‘온 식구를 위하여’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릿츠’라는 워낙 비싼 곳으로 유명한 이름을 보고, 아니 이런 것을 우리에게...하고 의아해 했습니다. 진정 하셔요. 제가 학교에서 만든 것이에요.
저 혼자 와 있으니 그 요리 학원을 다니는 동안 시간을 최고로 이용해야겠다고 생각 하였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와 수업이 없는 주말에는 리츠 호텔 안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 에스파동(Espadon)의 주방에 가서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우리 학교가 같은 호텔 소속이니 그 레스토랑의 주방장이나 쉐프들이 가르치러 자주 드나들었습니다. 그 주방장이 한번 저를 보고 참, 우아 하시군요 하고 좋게 보아 준 것(안경이 필요 하네)이 진짜기를 바라며 에스파동 주방의 문을 밀고 들어갔습니다.
미국의 육체파들 사이에서 저의 빈약한 신체에 대해 항상 열등감을 갖고 있었는데요. 유럽에서는 그런 것만 따지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동양사람처럼 키가 자그마한 프랑스 사람들은 워낙 동양 사람들의 나이를 전연 알아보지 못하니 눈이 뼈도 분수가 있지, 저도 무조건 ‘마드모아젤(아가씨)’이 되어 버리더군요.
야!, 이거 내가 올 곳을 잘 찾아 왔나! 하고 신이 났습니다.
키가 크고 나이가 듬직한 주방장이 금방 ‘비앙 수르(bien sur·물론이지요)’ 라고 답을 하였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에스파동 주방으로 가는 일이 시작 되었습니다. 오후와 저녁에는 거기서 야채를 다듬으며 쉐프나 그 아래의 수쉐프가 만드는 음식을 열심히 보았습니다. 음식 하나하나에 쏟는 그 정성에 저는 감탄을 하였습니다. 샬롯이라는 작은 양파같이 생긴 것에, 버터를 넉넉히 넣고 볶다가 물을 좀 추가하여 무르게 하고, 졸이더군요. 수분이 다 졸고 나중에는 다시 버터만 남아 샬롯을 지글지글하고 먹음직스럽게 졸여지는 것이지요.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보수는 물론 없었습니다. 일 하도록 붙여 준 것만도 감지덕지였는데요. 단 일 하는 날은 거기서 점심이나 저녁을 꽤 잘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만 해도 저는 너무 좋았습니다. 전에도 파리에 가 보았지만 이번에는 하고 싶은 일이 뚜렷이 있으니 기분이 벌써 달랐습니다. 발걸음을 가볍게 움직이며 파리의 매력에 도취되어 지냈습니다. 멋있는 옛날 건물, 낡았지만 차밍하게 꾸민 카페, 골목길의 아담한 상점들, 고급이 아니더라도 자기의 멋을 살려 차린 여자들, 볼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저녁이면 많은 남자들이 정장에 서류함을 들고 퇴근 하면서, 다른 손에는 그날 저녁에 먹을 바게트,(껍질이 바삭 거리는 기다란 빵)을 들고 가는 모습이 너무나 재미나게 보였습니다. 돌아다니다가 출출하면 길에서 파는 얇은 크렙(부드럽고 달콤한 밀전병)을 사서 먹었습니다. 매번 맛이 다른 잼을 넣어 달라고 하기도 하고 혹은 부풀린 크림을 넣어 달라고 했고 어떤 때는 단순히 설탕만 뿌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그저 자나 깨나 요리 생각만 하며 지냈습니다. 가능하면 마음에 걸리는 딸 생각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했지만 집안 청소도 할 것 없고 저녁 준비를 서두를 것도 없고 그저 제가 좋아하는 요리에만 전념을 하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정신으로 대학 공부를 했으면 특등 졸업이 틀림없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피식 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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