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배우며
우울증도 많고 자살도 많은 요즘 “왜 살아야 합니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환자들이 종종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독일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한 정신과 의사는 “삶의 의미가 진실로 존재한다는 확신을 잃은 적이 없었다”고 고백했다. 삶의 의미를 확신하는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다.
사람이 어릴 때는 자기 자신만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이 많다가 점차 나이를 먹고 생각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존재 의미나 삶의 이유에 더 많은 비중을 두게 되는 것 같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우리는 살 이유가 넉넉히 있다. 사람은 도움을 받을 때보다 도움을 줄 때 더욱 자신의 존재 의미를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이웃에 대한 사랑의 표현도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나는 직업상 몸의 일부인 콩팥을 신장병 환자에게 기증하는 사람들을 보곤 한다. 배우자, 친구, 신앙공동체에서 만난 친구 등.
그 중에서도 유난히 잊혀지지 않는 사건이 있다. 주는 마음과 위로하는 마음이 특별히 가슴에 남았던 케이스였다. 뉴욕에서 신장이식 수련의 과정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연휴에 당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신 분에게서 콩팥이 하나 기증되었다는 소식이 왔다.
기증된 콩팥과 혈액형·조직이 가장 잘 맞는 환자를 고르다 보니 2명이 나왔다. 교수님은 시간이 촉박하니 두 환자를 동시에 병원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한번 더 혈액 항체검사를 하여 더욱 잘 맞는 사람에게 이식하라고 했다. 지시대로 두 환자를 불러서 각기 다른 곳에 대기시켜 놓고 마지막 검사 결과를 기다리게 하였다.
시간이 흘러 마지막 검사 결과가 나오고 한 분이 선택되었다. 이 소식을 누구에게 먼저 전한단 말인가? 모두 몇 년씩이나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기다렸던 분들인데.
우선 선택된 환자에게 먼저 갔다. “축하드립니다. 곧 바로 수술하시게 됩니다” 환자와 가족들의 기쁨의 환호성이 울렸다. 모두 얼싸안고 축하를 했다.
다음은 탈락된 환자에게로 갈 차례였다. 멀지 않은 곳에 있던 대기실로 가는 발걸음이 너무도 무거웠다. 다리가 고무다리 같이 흐느적거렸다. “병들고 힘든 사람의 소망을 이렇게 잔인하게 뺏어야 하나” 싶었다.
“환자가 가난해 보였는데, 여기서도 소외되어야 하는가? 나는 무슨 난리를 만날까?” 걸어가는 내내 병원 복도가 절망의 터널처럼 느껴졌다. 겨우 그 곳에 도착하여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맞은편 창문으로 비치는 맨해턴 강변의 불빛도 날씨가 추운 탓인지 파랗게 보였다. 한동안 내가 표정이 굳어진 채 말을 못 꺼내고 있었나 보다. 눈치를 챈 환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닥터 김, 나는 더 기다릴 수 있어요. 나보다 더 급한 사람이 콩팥을 받게 되어 기뻐요”
“그래요, 닥터 김. 힘을 내서 다른 사람 치료를 잘해 주세요.”
환자의 부모들이 나를 포옹해 주었다. 몹시 추웠던 밤, 병원의 냉기가 따뜻하게 느껴졌다. 병원 창밖으로 보이는 맨해턴 강가의 불빛이 뿌연 눈앞에서 몹시도 아름답게 흔들리고 있었다.
김홍식 내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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