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비치클럽에서 가족들과 함께.
딸이 4살 되던 해에 우리는 뉴욕의 동쪽에 자리잡은 롱아일랜드로 이사를 했습니다. 뉴욕의 손바닥만한 놀이터에 바글바글 모여야 하는 것보다 아이를 자연 환경이 좋은 섬에서 기르게 된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습니다. 섬의 북쪽 해변가(north shore)는 오래 전부터 뉴욕의 돈 많은 갑부들이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황금의 해안이라고도 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도 그 곳에 저택을 갖고 있었고(지금은 박물관으로 보존되어 있음) 반더빌트, 울워드, 오토칸 이외에도 수많은 부자들이 대저택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어 있습니다. 박물관이 된 로즐린의 핍스(Phipps) 집안 저택에서는 좋은 그림을 볼 수 있고 아담한 카페에서는 점심을 먹거나 차를 마실 수 있으며 멋진 조각품이 있는 정원을 거닐 수도 있습니다.
궁전을 연상케 하는 웨스베리 가든도 정말 볼만 하구요. 오이스터 베이의 식물원에서는 희귀한 식물 구경을 할 수 있는 뿐 아니라 여름 밤에는 피크닉 바스켓을 들고 가서 음악회를 감상할 수도 있습니다. 좀더 멀리 나가 있지만 반더빌트 저택에 한 번 가 보셔야 해요. 한 개인이 바다에서 수집한 생물도 희귀하지만 롱아일랜드 사운드를 내려다 보는 그 저택은 유럽의 자그마한 성을 연상케 합니다.
스캇 핏제랄드라 하는 유명한 미국 작가는 이 노드쇼어를 배경으로 ‘위대한 게츠비’라는유명한 책을 썼습니다. 전연 다른 배경에서 자란 게츠비라는 남자가 소위 미국의 상류사회 사람들과 생활하면서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그린 소설입니다. 인간의 미묘한 감정을 너무나 잘 묘사한 책이더군요. 연극은 보지 않았지만 소설 다음으로 가장 작가의 의도를 잘 표현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 했습니다. 넬슨더밀이라는 작가는 황금의 해안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쓰기도 하였습니다. 롱아일랜드의 대저택에 사는 사람들과 그 곳에 살러온 마피아(이탈리아의 시실리 섬에서 시작된 갱단)와 관련된 이탈리아계 사람과의 생활을 그린 것. 흥미진진하게 쓴 책
이라 한동안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랐었습니다.
이 북쪽의 해안에서도 특히 로커스트밸리, 오이스터베이, 센터아일랜드, 로이드넥 등에는 지금도 대대로 내려오는 부자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한국인에서는 부자가 3세대를 못 간다는 속담이 있지만 서양에서는 그렇지도 않던데요. 대개 어려서부터 교육을 제대로 시키려고 노력을 하더군요. 돈을 한꺼번에 물려주지 않고 나누어서 물려주게끔 여러 가지 제도를 아이가 어려서부터 준비해 놓는 것을 보았습니다. 배를 좋아 하는 사람들은 센터 아일랜드의 사와니카(Seawahnaka) 요트 클럽의 들고 크릭(Creek)이나 파이핑 록(Piping Rock) 같은 골프클럽에 들어 자기들끼리 놀지요. 그리고 아이들은 대개 이스트우드나 프렌즈 아카데미에 보냅니다.
우리는 너무나 엄청난 집값 때문에 그 유명한 동네의 중간에 끼어 있는, 이름도 없는 베이빌(Bayville)이라는 동네의 물가에 집을 샀습니다. 땅은 손바닥 만했지만 고급 동네인 센터 아일랜드와 로커스트밸리 사이에 끼어 있고 북쪽으로는 바다 건너 커네티컷 주가 보이고 뒤로는 오이스터 베이라는 만을 접하고 있어 경치는 그만이었습니다. 특히 남편한테는 죽어도 물가로가야지 섬에 살면서 물이 보이지 않는 곳에 집을 살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은 정말 별 볼일이 없었습니다.
판자 집이지 이런 것을 집이라고 해? 독일을 기준으로 본 남편의 말이었습니다. 도둑이 오려면 그냥 걸어 들어올 수 있겠네. 하지만 마침 집을 보러 갔을 때 바다에(Long Island Sound라고 합니다) 무슨 경주를 하는 날인지 수많은 돛단배가 깔려 있어 그 전망에 그만 홀딱 반해 버린 것이지요. 돈이 생기면 집은 뜯어 고칠 수 있지만 전망은 바꿀 수 없지 않습니까! TV에서 보는 태풍이 불어오면 성냥각이 부서지듯이 무너져 버릴 듯한 그 허름하지만 전망이 그만인 그 집을 결국 사기로 한 것입니다. 이사를 나오고 보니 제가 미국에 와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프랑스 사람들과 어울려 자주 놀러 나온 곳이 바로 옆 동네인 센터 아일랜드였습니다. 섬 입구에는 경찰의 초소가 있고 큼직한 저택들이 나무에 둘러 싸여 드믄드믄 있는 곳입니다. 전용 비행기가 내릴 수 있는 집도 있구요.
대여섯 명인 우리 그룹은 큼직한 벽돌집에 정원이 무척이나 넓고 바다에 접해 있는 프랑스 사람인 카운트(Count-귀족의 직위) 더덤피에 저택에 자주 놀러 나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프랑스에는 진짜 성을 갖고 있고 가끔 찾아오는 휴양지로 그 저택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수상스키도 타고(저는 운동과 너무나 담을 쌓은 사람이라 시도를 했지만 성공치 못함) 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카테마란(catemaran) 배를 타고(촌스럽게 배멀미로 그것도 못탐) 놀았습니다. 그 집 아들 엘리는 마음이 좋아 매 주말 오는 우리에게 관대하게 있는 것을 내놓았습니다.
필렛미뇽(filet mignon-소고기 안심) 요리를 처음 만들어 본 것도 그 집에서였습니다. 제가 그 당시 때때로 재료라도 사갖고 가서 한 두 가지 한식이라도 만드는 신통한 아이였으면 오죽이나 좋았으련만! 거기까지는 생각이 못 미치는 덜된 아이였으니!...... 그래서 우리 딸은 저 보다 나은
사람이 되라고, 친구들에게 잘해라, 밥 잘해주는 그 친구 엄마에게 가끔 꽃을 사가라, 비서에게도 잘해라, 등의 잔소리를 자주 한답니다.
엘리네 집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개 미국에서도 상당히 이름 있는 상류 사회의 집안사람들 이었습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갑부들, 큰 정유회사의 회장집 딸들을 만난 것도 그 집에서였습니다. 저는 거기서 알게 된 한 상류 사회 집안의 딸과 아파트를 함께 얻어서 룸메이트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참 우아해 보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리나로부터 자기 아버지가 12대의 롤스로이스(고급 자동차)를 갖고 있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한대 갖기도 힘든 그 차를 12대나. 눈을 똥그랗게 뜨고, 12대나? 아이, 같은 때에 한꺼번에 가진 게 아니구...라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참 좋은 동네라고 생각했지만 이사 나와서야 그렇게 굉장한 동네 인줄은 알게 되었습니다. 하여튼 우리가 이사를 한 후에는 돈이 생기면 어쩌구.. 떵떵거리던 말은 무척이나 고가인주택세와 은행 융자를 매년 감당하느라 쩔쩔매 내부만 조금씩 고쳐가며 살았습니다. 날씨에 온기가 돌기 시작하는 4월 중순부터는 두툼한 옷을 끼어 입고 뒷마당에 앉아 바다를 보며 신문을 보거나 책을 읽었습니다. 더운 여름에는 특히 우리 딸이 까무잡잡하게 그을리느라 로션을 바르고 지낸 곳이고 늦가을에 찬 바람이 불 때까지 주말에는 뒷마당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우리 딸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수많은 디너 파티, 여름의 테라스 파티를 하며 15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뒷마당에서 오른 쪽으로 보면 베이빌 해안이 반달을 그리고 있고 오망졸망 붙어 있는 집들이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얼마나 평화롭고 낭만적으로 보이는지 모릅니다. 야 우리가 이런 곳에 와서 살게 되다니! 꿈이냐 생시냐 꼬집어 볼만 했습니다. 멀리는 센터 아일랜드의 대저택이 나무에 쌓여 드믄드믄 보였습니다. 특히 일요일에는 그 파도치는 해안을 따라 산보를 하면 뉴욕에서 불과 1시간 떨어진 곳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랍니다.
바다는 정말 단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습니다. 호수 같이 잔잔한 날이 있는가 하면 바람이 센 날은 물결이 무서우리 만큼 출렁거렸습니다. 그 바다의 전망은 사시사철 분위기가 다르게 좋았습니다. 언제 제일 경치가 좋은지 아셔요? 다 좋지만 특히 달밤의 경치는 자지러질 만큼 숨이 막히게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때는 난간에 기대어 바다와 반달 모양의 베이빌 해안을 내려다보며 넋을 잃고 서 있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작가라면 가슴을 녹이는 시를 줄줄이 썼을 것이고 화가라면 수많은 캔버스를 채웠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이렇게 환경이 좋은 곳에 살게 되었으니 남보다 일찍 출근하고 오후 3시쯤 집에 와서 골프를 치는 등 사는 것을 좀 즐기겠다고 남편이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웬걸! 롱아일랜드의 고속도로는 수많은 차량으로 거의 주차장인 것처럼 차들이 꾸물거리고 다닐 수밖에 없어 출퇴근에 엄청난 시간이 허비 되었답니다. 특히 유럽에서 사업 관계되는 사람들이 오면 저녁을 함께 먹고 늦게 들어오고 다음날 조찬을 같이 하기 위하여 새벽 같이 일어났습니다. 그런 때는 잠이 모자라 얼굴이 귀신 같이 하얗게 되어 출근 하였습니다. 일찍 퇴근하여 골프 어쩌구 한말은 한 번도 실행하지 못한 맹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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