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다닐 때 아르바이트로 발달장애가 있는 학생을 가르친 적이 있다. 부모가 모두 박사인 그 학생은 부모들이 독일에서 유학을 할 때 태어나 한국어와 독일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학생이 대부분 그렇듯이 그 아이도 행동장애가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없을 때 이해할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행동이 거칠어지곤 했었다.
그때 난 특수교육과를 다니고 있었지만 아직 전공도 제대로 모르고 장애학생을 대한 경험도 없는 초보자였다. 오히려 부모가 그런 상황을 나보다 많이 경험했고, 그들은 나름대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지 않을까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다.
자녀가 거리에서 화를 내며 괴성을 지르고 빙빙 돌며 떼를 쓸 때 부모는 바로 독일 말을 했다. 처음엔 몰랐지만 결국은 “쵸코라테”를 줄 테니 조용히 하라는 내용이었다. 왜 독일말로 했을까? 물론 그 학생이 독일말을 더 잘 알아듣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학생은 내가 쓰는 한국말을 모두 다 알아들었고 그 학생의 엄마도 평소에 한국말로 아이와 대화를 하는 것을 미루어 보아 언어의 ‘이해력’에 따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중에 부모와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 그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길에서 다 큰 아이가 소리를 지르며 이상한 행동을 하면 너무 창피하기 때문에 독일어를 사용하여 주변사람들이 장애에 의한 행동이라고 의심하기보다는 알지 못할 갈등에 의한 것인가 하고 생각하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학생의 엄마는 한 발작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자녀에게 “이름이 뭐니?” “밥 먹었니?” “재미있었니?”등 간단한 질문만 해도 아이가 생각하고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엄마가 바로 답을 아이의 입에 넣어 주는 것이다.
난 특수교육을 떠나서 대화의 기본이 자신의 말 할 순서를 기다리고 서로 말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 학생의 엄마에게 아이가 대답을 바로 못해도 그냥 어떤 대답을 하는지 기다려 보면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낸 적이 있었다. 그 후 오래가지 않아 난 다른 일로 그 학생과 헤어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다.
특수교육을 오랫동안 연구하면서 장애학생에게 질문을 하면 반드시 스스로 생각하고 대답할 수 있도록 좀 기다려 주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교사교육에서 항상 기다림의 미학을 강조하곤 한다.
그런데 그것의 실천이 부모들에게 더욱 중요하다.
그 이유는 당연히 장애아동이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는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더 많고 결국 질문하고 대답해야 하는 기회가 가정과 지역사회에서 더욱 많기 때문이다. 식당에서도 교회에서도 장애학생에게 직접 묻고 적절하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답하도록 기다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무작정 속터지며 기다리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나 힘이 들다. 그래서 난 그것의 실천방법을 ‘5초의 비법’이라고 부른다. 속으로 적어도 다섯을 세는 것이다.
무작정 남의 대화에 끼어 대답을 대신해주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시간을 갖는 쉬운 방법이다. 처음에 5초가 너무 길면 적어도 3초라도 기다려 보면 어떨까? 그동안에는 미리 답을 알려주는 것도 참아야 하고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해 다그치는 것도 참아야 한다. 질문을 하고 기다려주는 것은 장애자녀뿐만 아니라 성격이 내성적인 자녀나 아직 질문에 대한 답이 어려운 어린 자녀들에게도 순서를 지키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우리는 적절한 대화방법을 익히게 하고 또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해 낼 수 있는 인지능력을 키워주는 기회를 주는 여유가 된다.
김효선 교수
<칼스테이트 LA 특수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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