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과 융화는 리더십의 기본
지난달 23일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 다시 한 번 벌어졌다. 200명 가까운 숫자의 학생들이 어바인 밸리 칼리지에서 디베이트 경연대회를 벌였다. 이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대부분 한인 학생들이었다. ‘공부는 잘 하는데, 부끄러움이 많고, 자신감 없어 보이는 전형적 한인학생’이라는 말이 무색하였다.
최근 부시 대통령이 “연안 일대 시추 규제법규를 해제하자”고 의회에 제출한 안건이 이번 디베이트 논제였다. 고등학생들에게 낯익은 주제도 아니며, 쉽게 찬반 의견을 밝히기도 간단한 주제는 아닌 것 같았다. 이 대회에는 초등학생들도 같은 논제를 들고 논쟁을 벌였다. 대회 한 달 전 발표된 논제를 가지고 리서치하고 스피치 연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다는 이들의 답변에 반신반의하며 25곳의 경연장 가운데 몇 군데를 참관하기로 하였다.
이 대회 진행본부는 참가 학생을 초등학생, 7~8학년, 그리고 고등학생 레벨로 나누고, 또 경험이 많은 참가자 그룹과 적은 그룹으로 나누어 경합하게 하였다. 대회 공식 포맷은 퍼블릭 포럼으로, 두 명의 학생이 한 팀을 이루어 상대방과 논쟁을 벌였다. 심판관은 어느 팀이 주어진 논제에 대해 찬성 또는 반대의 입장을 선택할 것인가를 동전 던지기로 결정하였다. 동전 던지기에서 진 팀은 발표 순서를 선택하였다.
먼저 초등학교 여학생들이 경합하는 자리를 지켜보았다. 한 팀은 논제를 소화하지 못한 듯 준비한 원고를 읽는 데 급급한 반면, 상대팀은 간간이 심판관은 물론 학부모들을 두루 둘러보며 주장을 전개하였다.
첫 회전이 끝나자 고등학생들이 경합하는 교실로 옮겨갔다. 역시 초등학생과는 달리 논제에 대해 다양한 증거를 제시하고, 설전도 더욱 격렬하게 전개하였다. 다만 지나치게 흥분한 모습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게 아쉬웠다. 아직 디베이트 매너를 몸에 익히지 못한 때문이다.
지난 가을에도 이들 한인 학생들이 겨루는 디베이트 대회를 참관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많은 한인 학생들이 디베이트를 한다는 사실에 고무되기는 하였지만, 아직은 스피치가 약하다는 생각을 저버리지 못하였었다.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은 눈에 띄게 스피치 기술이 좋아졌으며, 대회 경험 있는 학생이 많아서인지 분위기가 조금은 차분하였다.
시간상 3번의 라운드로 진행된 이 대회는 무작위로 세 번의 경합을 치르고 그 성적을 종합하여 수상자와 팀을 결정하였다. 먼저 레벨별로 우수 스피커, 즉 디베이터를 등수에 따라 10명을 발표하였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레벨에는 역시 여학생들이 더 많아 보였다. 놀랍게도 고등학생 레벨에서는 남학생들이 더 좋은 평가를 얻었다. 개인 시상에 이어 상위 팀 시상이 잇달았다. 수상자는 매우 기뻐하였고, 패자는 승자를 축하해 주었다.
이 대회는 비록 어바인 밸리 칼리지 스피치와 디베이트 팀에서 주관하고 진행하고, 일부 비한인 학생이 참가하였지만, 한인 커뮤니티 차원의 대회였다. 과연 이 한인 학생들이 큰 대회에서 타인종과의 경합에서도 얼마나 경쟁력을 보일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지역대회에서 입상할 수준의 학생은 적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언젠가 ‘말 잘하고 사교성도 좋은 전형적 한인 학생’이라는 말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다. 진정한 승자란 1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인정해 주는 리더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이 더 이상 ‘공부는 잘 하는데, 수업 시간이나 공식적인 자리에서 말 한 마디 못하는 아이’가 되어 주변에서 서성거리지 않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이 사회에서 아직 리더십을 말할 단계가 아닌지 모른다.
아직도 대부분의 한인 고등학생들은 그들끼리만 어울리는 성향이 강하다. 이들에게서 리더십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 1세대들이 자녀 앞에서 타협과 융화의 관점에서 이민 생활을 전개하였으면 좋겠다.
(213)381-3401
알렉스 정
<윌셔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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