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미국에 입국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체인식을 위한 열손가락 지문채취법이 제정되었고 이곳 워싱턴 덜레스 공항부터 시범 운영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두 돌이 안 된 손자를 안고 입국하셨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지만 평생을 농사와 목축업으로 사신 영어도 잘 못하는 분들이 아이까지 동반하고 오시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우는 현실이 되어버렸다. 비행기가 도착한지 세 시간 이상이 지났건만 부모님도 두 살짜리 우리 아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유난히 부산스러운 사내아이를 비좁은 기내에서 숨죽이고 데리고 오느라 14시간의 비행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거기다 또 몇 시간이 흘렀으니 모두들 얼마나 지쳐 있을까 안타까웠다. 이윽고 항공사 직원이 나오면서 하는 말이 아버님의 지문을 채취하는데, 손가락 지문이 인식되지 않아 2차 검색대로 (끌려)가셨고 그 곳에서 다른 지시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했다. 아버님은 누구나 갖고 있어야 할 지문을 평생의 농사일과 목축일로 잃어버린 것이다.
2차 검색대라는 곳은 별로 기분 좋은 곳은 아니다. 강제적으로 그 곳으로 오게 된 사람들은 방문 목적이 불순하거나, 미국 안보에 위협을 줄 수 있거나, 범죄기록이 있거나 등등의 이유로 곧바로 귀국 조치자, 또는 수감가능 대상자로 간주되기도 한다. 70의 노부부가, 그리고 2세도 안된 아이가 그런 환경에 있다는 것에 화가 났다.
‘안보 장막’은 법 없이도 살아온 노부부도, 아무 것도 모르는 갓난아기에도 적용되는 현실이 된 것이다. 당신들 나라는 아니지만 아들, 손자 그리고 며느리가 살 나라라며 기도할 때면 빼놓지 않고 미국의 안녕을 기원하는 그들의 마음을 누가 알아나 줄까 하는 생각에 무척 씁쓸했다.
정영훈/옥스퍼드 아카데미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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