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물포가 구한말에 개혁문화의 관문이었다면 인천은 한국전쟁으로 풍전등화에 있던 대한민국의 생명을 살려낸 항구였다. 인천 상륙작전은 군사전문가들이 5,000분의 1밖에 성공할 확률이 없다고 했지만 맥아더 장군은 1950년 9월15일 이를 성공시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지 3일후인 9월18일 대구 칠곡군 다부동 전투에서 미군과 국군 1사단이 적의 포위망을 뚫고 북진을 시작했고 10일 만에 3.8선에 도착했다. 한국군 1사단이 38선에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이승만 대통령은 정일권 참모총장을 불러 무조건 북진하라는 무서운 명령을 내렸고 정일권 총장은 국군 1사단에 북진명령을 내렸다. 그날이 10월 1일이었고 정전 후에 그 날을 기념해 10월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하게 되었다.
맥아더는 70세 노병으로 5성장군의 군복을 벗으며 미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는 연설을 남겼다. 맥아더는 군인으로서 전장에서 이기고 워싱턴 정치에서 진 장군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한국전에서 군복을 벗고 84세에 눈을 감은 맥아더 장군은 그의 부인 진과 나란히 버지니아 노폭 맥아더 기념관에 안장되어있다. 세계적인 영웅, 한국의 은인 맥아더 장군 부부의 명복을 빈다.
윤학재/ 워싱턴 문인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