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 의원(한나라당)이 마이크를 잡았다. 문국현 의원에 이어 다섯 번째 질의자였다. ‘초딩이’인 문 의원의 산발적인 질의에 다소 흐트러졌던 10일 주미대사관 국정감사장 분위기는 정 의원이 등장하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태식 대사를 비롯한 증인들은 물론 대사관 직원들, 취재진도 집권당 최고위원에 5선의 정치거물이 쏟아낼 질의 내용에 귀를 쫑긋거렸다.
“식사대접 잘 받았다”며 먼저 이 대사를 추켜세운 정 의원이 꺼낸 화두는 전시작전권 환수문제였다. 그는 이 대사에게 “2년 전 대사관 국감에서 내가 전작권 환수와 관련 질의한 내용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이 대사가 “기억 한다”고 답하자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물었다. 이 대사의 답변이 이어지자 정 의원은 바로 말을 끊었다.
“실망스럽다. 허위발언하면 안 된다. 내가 다 기억한다.”라며 이 대사에 면박을 줬다. 2년 전 자신의 발언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통박이었다.
정 의원은 이어 2년 전 자신의 발언 내용을 소개하며 “전작권 환수는 지난 정권에서 군사적 필요보다 정치적 목적이 원인이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세력들이 위험한 일을 했는데 대사는 (2년 전과) 아직도 같은 생각인가?”라고 이태식 대사를 압박했다.
이 대사가 “(한미 간에) 유용한 합의”라며 동의하지 않자 정 의원은 인신공격적 태도로 돌변했다. “주미대사는 특정 정권이나 정당을 위한 자리가 아니다”며 “아직도 빨리 환수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솔직히 답해라”고 윽박질렀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노무현 정권에서의 환수합의가 잘못됐다고 인정하라는 압력이었다.
정 의원이 지루하게 이 대사를 공박하자 국감장 분위기는 싸늘하게 식었다. 취재진 사이에서도 “좀 심하다”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이 대사가 “한미 합의사항을 그대로 이행하는 것이 맞다”고 소신을 굽히지 않자 그는 “태도가 실망스럽다”며 마이크를 곧 내려놓았다.
재벌 2세라는 경제전문가답게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한 대사관의 대응이나 문제점을 파헤치리라는 기대는 무너졌다.
‘국정감사’를 한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멀리 미국에까지 달려와 ‘거물 정치인’이 한 질의 내용은 이 대사의 ‘항복’을 요구한 게 대부분이었다.
국감장을 나오던 한 외교관은 “이러다 해외 국정감사 무용론이 나오는 게 아니냐?”며 ‘이상한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종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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