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러시아가 지난 9월29일 가스 협력 사업에 합의하면서 블라디보스톡에서 북한을 경유하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하여 배관천연가스(PNG, pipeline natural gas)를 한국으로 수송하는 방식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한·러 양국에게 모두 중요한 프로젝트이다. 먼저 우리로서는 이번에 합의된 도입량이 연간 750만톤으로서 국내 예상 천연가스 소비량의 20%에 해당하는 큰 규모이다. 또한 그동안 중동, 동남아시아로부터의 액화천연가스(LNG, Liquefied natural gas)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수입선을 다원화 하고 도입 단가도 절감하는 의미가 있다.
러시아도 태평양 연안 국가들에 대한 가스공급을 본격화 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고 있다. 사실 러시아와의 PNG 사업은 1990년대부터 민간 차원에서 거론되었으나 그간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정상회담 타결로 강한 추진력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무엇보다도 북한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북한이 이를 수락할 경우 매년 앉아서 1억달러를 벌어들일 것이라는 전망을 하며 낙관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북한의 2007년 수출액이 9억1,900만달러였고, 한국이 2007년 금강산 관광대가로 북한에 지급한 금액이 2,038만 달러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1억달러가 북한에 갖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파이프라인은 일단 건설되면 한국과의 접촉이 그다지 크지 않으며 러시아라는 존재가 있으므로 북한으로서는 개성공단이나 금강산관광에 비해 부담 없는 외화벌이 수단이라는 점도 낙관론에 힘을 더한다. 더구나 북한 가스배관 공사를 성사시킬 책임은 공급국에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북한과 접촉해 협의할 것이라는 점은 사업의 성사에 기대를 갖게 한다. 실제로 러시아 대표기업 가스프롬은 한국과 러시아의 자원협력을 위해 북한과 접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가스배관 공사는 한국과 러시아, 북한 세 나라의 인력, 기술, 원부자재가 결합되어야 하며 북한의 동부 내륙지역을 가로질러 추진된다. 접경지대에서 이루어지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에 비해 북한이 느끼는 부담은 더 클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북한 군부의 입장이 가장 큰 걸림돌일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북한은 개성공단, 금강산 가는 길의 차장 밖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의 동부 내륙지역을 수백명의 한국인 기술자들이 왕래하는 상황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다. 북한 핵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 북한의 PNG사업 참여를 촉구하고 싶다. 북한이 이번 사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연간 1억달러의 수입에 그치지 않는다. 먼저 북한이 1991년 12월 선포한 나진-선봉경제특구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북한 최초의 경제특구인 나진-선봉은 해외투자 유치에 실패하여 지금은 중국인들의 소규모 투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지역이다.
나진-선봉은 PNG 수송의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그간 외자유치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에너지 부족문제를 그 PNG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와 한국의 기업을 유치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중국에 치중한 투자선을 다변화하여 나진-선봉을 외화벌이의 전초기지로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 PNG 사업은 일본 등 해양세력과 중국, 러시아 등 대륙세력을 연결하는 반도국의 장점을 살리는 최초의 사업이다. 지정학적으로 강국에 포위되어 있는 한반도의 장기적인 생존전략으로서 남북한에 모두 필요한 사업인 것이다.
가스수송을 시작으로 상품수송 나아가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중국횡단철도(TCR)를 연결하는 인력수송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이렇게 되면 남북한이 동북아경제공동체를 성사시키는 주역으로 나설 수 있는 것이다. 남북한이 후손에게 물려 줄 통일국가를 염두에 둔다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사업인 것이다.
박 진 KDI 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